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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지리산 들어가 구연동화 쓰는 박미정 작가

2019-03-27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 구연’은 기존의 동화를 목소리 연기로 편집해 공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다 보니 일일이 편집해야 하는 불편함과 전문작가가 아니다 보니 내용 전달이 어색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처음부터 구연을 목적으로 하는 동화만 창작하는 문학의 새로운 트렌드인 ‘구연동화’ 작가가 등장했다.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지리산 산속에서 구연동화를 쓰고 있는 박미정(53) 작가. 박 작가는 이미 만들어진 동화를 구연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아예 구연이 목적인 동화를 창작하고 있다. 그래서 박 작가가 쓴 동화는 막힘 없는 구연이 가능하고, 동화작품의 내용이 듣는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전달되도록 해 준다.

  

 

◆도심생활 접고 지리산 찾아왔어요

박미정 작가는 우리나라의 ‘제1호 구연동화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지난 2016년 8월 소년문학과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가 주관한 구연동화 공모전에서 박 작가가 제1호 구연동화작가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평소 박 작가는 구연동화의 전제조건인 ‘말하듯이’ 글을 쓴다. 이러한 구어체는 자연스러우며 화자와 청자 간의 직접적 유대를 가능하게 해준다. 말하듯이 쓴 동화는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도 쉽게 친숙함을 줄 수 있다. 박 작가는 “좋은 예로 헤밍웨이가 ‘모든 미국 문학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부터 나온다’고 극찬했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처음부터 끝까지 구어체로 쓰였다. 저는 이런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소개했다.

 

그런 그에게도 한계가 찾아왔다.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공간적 한계에서 발생하는 글감의 부족.

 

박 작가는 “글은 내가 본 세상에서 나온다. 글쓰기는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삶의 진실과 행복을 찾아가는 탐색의 과정”이라며 “하지만 도시의 단조로운 삶을 살면서 내가 원하는, 상황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감정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을 기대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그가 찾은 곳이 지리산. 대자연의 무궁무진한 글감이 살아 숨쉬는 어머니의 산.

 

3년 전 구연동화 작가의 길을 가기 위해 도시의 화려한 삶을 버리고 지리산으로 귀촌해 자연의 한 부분이 돼 산속 습생을 체득하며 창작의 원고지를 써 내려가고 있다.

박 작가는 평생 도시에서만 살았다. 자연에 무지하고 자연이 주는 평안과 행복이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지리산은 그에게 선물이었다. 그의 예상치 못한 습생변화는 예상치 못한 축복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줬다. 집 앞에 핀 꽃마리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노을이 만지고 간 자연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경험인지 깨닫게 됐다. 박 작가는 “지리산 생활은 나에게 훨씬 풍성한 인생을 살게 해주고 있다. 그래서 내 인생의 마침표는 이곳 지리산 기슭에서 찍고 싶다”고 밝혔다.

 

◆풀·벌레·바람·별·달이 작품 소재랍니다

 그는 나무 안기를 좋아한다. 특히 굴참나무처럼 겉껍질의 코르크층이 발달돼 있는 울퉁불퉁한 나무를 좋아한다. 나무를 꼭 안고 있으면 더없이 편안하고 행복하단다. 이렇게 자연에 친숙해질수록 자연을 조금씩 더 깊이 알고 싶고, 사랑하는 마음도 생겨나는 걸 느낀단다. 

 

박 작가가 지리산에 들어와 쓴 첫 번째 작품은 ‘수탉의 비밀’이라는 동화다. 언제부터 괴상한 새소리가 매일 들려 왔다. 그 소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고 살아가는 수탉 이야기를 쓰게 했다. 자신이 부끄럽게 생각하는 비밀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수탉. 하지만 거짓말이 들킬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나고, 거짓말 들킨 것이 억울해 우는 수탉에게 감나무가 뜻밖의 말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미국의 자연심리학자 리처드 루브는 ‘자연결핍장애’라는 개념을 제기했다. 그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의 원인은 일상적인 자연체험의 결핍이며, 따라서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산, 강, 바다, 들, 논밭에서 뛰어놀 자유를 보장한다면 치료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숲과 직접 만날 수 없는 아이들에게 책을 통해 자연을 마음으로 체험하게 해주고 싶단다. 지리산으로 들어와 어린 시절 만났던 반딧불이를 다시 보고 행복감을 느꼈던 그는 자연에서 느낀 그 행복을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어 한다.

 

그가 쓰는 동화는 자연동화이기에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그가 나무가 돼 보기도 하고, 바위나 동고비, 별, 심지어는 씨앗이 돼 보는 상상을 하면 너무나 즐겁단다.

 

박 작가는 “‘모든 답은 위대한 자연 속에 있다’는 건축가 가우디의 명언을 조금씩 배워가는 기쁨에 자연바라기 동화쓰기는 행복이다”고 말했다.

 

◆아이는 상상력 키우고, 어른은 동심 찾아야죠

“자연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수한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도토리 한 알에서부터 숲은 시작되고, 숲에는 희망과 꿈이 매일 꿈틀거리며 자라나고 있다. 이 자연 속에 아이들이 없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자연으로 아이들을 초대할 궁리를 한다. 꿈틀꿈틀 아이들 마음속에 잠들어 있을 상상을 깨우고 싶다. 아이들은 나무가 어떻게 노래하는지 알고 있을까? 숲을 깨우기 위해 겨울 내내 꽁꽁 언 차가운 얼음 밑으로 봄이 얼마나 많은 입김을 불어넣었는지 궁금하지 않을까? 풀이 자라는 소리를 알고 있을까?” - 박미정 작가 노트 중 -

 

박 작가는 아인슈타인이 말한 “만약 우리가 자신의 상상력을 바람직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상상력은 언제나 다양한 시각과 열린 마음에서 나온다. 무엇보다도 상상력을 발휘할 줄 아는 사람이 더 긍정적이고 더 적극적이게 된다. 아이들이 더 행복해지려면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서 박 작가는 자연에서 아이들의 동심을 일깨우는 작업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럼 ‘어른들에게는 동심이 필요없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어른이 돼서도 행복하려면 나를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의 첫 작품집 <풀이 자라는 소리를 들어보지 않을래>를 읽은 50대 지인은 책 속의 동화, ‘도토리형제의 기도’를 읽고 참나무 숲에 가면 도토리형제가 생각난다고 했단다. 70대 할머니는 ‘쥐똥나무의 사랑’을 읽고 쥐똥나무의 향기가 너무 궁금하다고 말했단다. 그래서 그는 어른들도 묵은 동심에 불씨를 살려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 작가는 자연을 의인화한 동화를 쓸 계획이다. <풀이 자라는 소리를 들어보지 않을래> 작품집에서처럼 생각을 자극하는 질문을 작품 끝마다 남길 계획이다. 그래서 아이들 스스로 “내가 만약 무엇무엇이라면~~~”이라는 관점으로 상상해 보고, 바람직한 인성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한다.

 

또 아이들에게 자연에 몰입해 교감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는 힐링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

 

박 작가는 “놀지 못하는 아이는 충동조절, 문제 해결 수단, 협동능력을 발휘시키지 못한다고 했다. 자유롭지 않으면서 위대해질 수 없다는 말도 있다. 아이 스스로가 자연 속에서 상상 현실을 즐기며 웃는 모습이 보고 싶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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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2810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