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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유채꽃과 함께 바친 묵주기도

2013-04-13

신중하게 눈을 맞추다가 맹렬하게 돌진해서 과녁에 꽂히던 아버지의 활. 아침의 신선한 바람과 빛을 가른 찰나. 과녁 뒤에 몸을 숨겼던 아저씨가 깃발을 휘휘 저으며 명중을 알렸다.

 세월을 흔히 화살과 빛, 또는 빠르게 흐르는 물에 비유하는 것을 두고 소녀는 어른들의 과장이 심하다 못해 지어낸 말의 유희로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육안으로 감지하기 어려운 화살의 속도와 명중에 환호하는 어른들과 감탄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던 어린 소녀. 돌아오는 길에 거치는 공원 벚나무는 하나같이 옹이마다 송진을 머금은 거목이었다. 함박눈처럼 흩날리던 꽃잎의 꿈결 같은 정경과 힘에 넘치는 더없이 당당했던 아버지의 기억도 이제 전설의 그리움이 됐다.

 결혼 후 이런저런 사유로 잦은 이사를 다녔다. 그 때문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생의 여정에 아쉬움도 많았고 좋은 인연들과 교류에서 묵주에 대한 추억 또한 많다.

 이제 과거가 됐지만 남편의 직장을 따라 가족이 제주도로 이주를 했다. 정월 바닷바람의 위력은 대단했고, 사나운 파도는 방파제에 서 있는 자체로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연일 종횡무진 싸락눈까지 흩날리는데 의지가지없는 이방인이 된 듯 외로움이 엄습했다. 가족의 출근과 등교로 홀로 집에 남아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집착적으로 책을 탐닉하는 것이었다. 성경과 천국의 열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소화 데레사.

 퇴직하고 하는 일 없이 홀로라는 고독에 이는 신앙적 갈증에 우리 부부는 성당 사무실에 들러 봉사단체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매일 미사에 참례했고 방과 후 아이들은 성당 마당에서 또래들과 반도 넘게 못 알아듣는 사투리가 흥미로워 웃음꽃을 피우고 공을 차며 놀았다. 남편도 퇴근 후 저녁엔 가족과 함께 자연스레 성당 행이었다.

 우리 부부는 처음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에 입단을 했고 두 사람 모두 전례부 일원으로 미사해설과 독서를 했다. 필자는 성가대에서 주님을 찬송하며 차츰 훈훈한 교우의 정을 체험했다. 어머니 혹은 할머니와 같은 연배의 단원들은 육지 사람에 대한 배타적 경계의 벽을 허물고 필자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셨다.

 쁘레시디움 회합 때 제주 방언으로 보고가 이어지면 빠른 어투를 놓치지 않고 메모하며 동화되려고 애를 썼다. 지금은 유채밭이 많이 없어졌지만 당시의 4월은 2월의 광풍과는 확연히 달랐다. 명징한 햇살에 맵싸하고 달짝지근한 유채꽃은 방향 없이 나부끼며 제주 천지를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이려고 작정한듯했다.

 성당도 지금처럼 많지 않아서 바닷가 먼 곳까지 환자 방문을 가는 일이 잦았다. 일손이 바쁜 자녀들로 오랜 병석에서 돌봄이 뜸해 욕창이 난 환우들이 많았다. 몇 명씩 조를 짜 버스에서 내려 노란 물결과 검은 돌로 경계를 나눈 들녘을 일렬로 걸으며 단장님의 선창으로 묵주기도를 합송했다. "은총이 가득~ 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선창의 목소리는 아름다웠고, 후송의 합송은 애절했다. 들녘의 화려한 꽃의 색채와 눈앞에 펼쳐진 쪽빛 바다. 뭉클하게 가슴에 이는 묵주기도의 감동으로 눈썹이 젖던 시간. 알알이 꾹꾹 눌러가며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는 묵주기도. 누군가를 지향하며 손 모아 올리는 잦은 화살기도. 환우들과 만남에서 '그들을 예수님 대하듯 하게 해주소서!'가 당시 필자의 화두였다.

 그러함도 아버지의 빠른 화살처럼 흘렀지만 추억만으로도 영과 육이 더없이 훈훈하다. 지금은 병중에 있어 봉사직을 수행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나날이지만, 회고하건대 그곳은 은혜의 땅이며 은총의 시간이었음을 감히 고백한다.

 

 

가톨릭평화신문: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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