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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반야심경’과 함께 떠난 8400km 자전거 여행

2018-10-17

고등학교 교사 퇴직 후  망설임 없이 떠난 여행

서울에서 바이칼호, 몽골  스위스까지 여정의 기록

“‘반야심경’ 읽으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차분해 졌다”

 

 

 

사람 사는 곳을 지나므로 생필품을 바리바리 챙길 필요는 없을 테지만 여분의 튜브, 타이어, 정비도구 등 자전과 관련 물품은 꼼꼼히 챙겼다. 자전거 여행에서 자전거는 여행의 거의 모든 것이다. 수채화 물감과 팔레트, 붓 한 자루, 스케치북도 챙겼다…세세한 일정을 잡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시점과 종점만 있을 뿐, 모든 것은 유동적이다.”

고등학교에서 문리를 가르치던 교사 유시범 씨는 퇴직 후 망설임 없이 홀로 자전거 세계여행을 떠났다. <반야심경>과 <장자>를 비롯해 수채화물감과 팔레트, 붓 한 자루, 스케치북을 챙겨 들고 서울에서 동해로, 동해에서 블라디보스톡, 우수리스크를 지나 중국 훈춘으로, 바이칼호수를 거쳐 몽골, 시베리아 횡단, 스위스 취리히에 이르기까지 8400km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거침없이 질주한 용감한 중년이다. 그리고 긴 여정 속에 수채화물감으로 그리며 채색해 나간 그림과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자전거와 반야심경과 장자>를 세상에 내놨다.

“살아오면서 정신과 육체와 관계의 군더더기가 주렁주렁 달리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10년 전 겨울 규슈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일본인 청년은 오키나와에서 일주일에 한 번 타이완으로 가는 배가 있다고 했다. 시야가 확 트이는 느낌이었다. 로망이 생겼다.”

저자는 끈을 놓지 않고 이런저런 루트를 생각하며 10년을 보냈고, 어느덧 퇴직을 했다. 이어 고민 없이 결단을 내리며 인생 2막을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 세세한 여행 일정을 잡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시작과 끝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여행기는 더 저돌적이고 더 매력적이고, 생각지도 못한 더 깊은 인연들을 만들어 낸다.

저자는 “냉장고문을 여는 데는 용기가 필요 없다. 아무런 위험이 없기 때문”이라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세스 고딘의 말을 되새기며 218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적어 나간 메모와 생동감 넘치는 여행 사진을 책에 담았다. 또한 <반야심경>과 <장자>를 곁들인 철학적 메시지와 개성 넘치는 수채화 그림도 함께 수록했다.

특히 <반야심경>을 읽으며 마음이 평안해지고 차분해지는 느낌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여정에서 만난 이들과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숙소에 돌아와 어김없이 <반야심경>을 써내려갔다. “어리석음도 없고 어리석음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이 다함도 없으며, 괴로움도 없고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도 괴로움의 소멸도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지혜로운 자는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그리고 여행 과정에서 곳곳에 스며있는 불교의 가르침에 귀 기울인다. “방이 너무 좁다. 가슴이 답답하다. 승조라는 스님이 있었다. 왕의 말을 듣지 않아 처형당했는데 죽기 전에 ‘사대(몸)는 원래 주인이 없고/ 오온(마음)도 본래 공한 것 뿐/ 칼날이 내 머리를 내리치겠지만/ 흡사 봄바람을 베는 것 같으리라’라는 유게(遺偈)를 남겼다. 스님의 말이 옳다. 답답함? 모두 마음의 무제이고 생각의 문제다.”

이와 더불어 그는 자연이 주는 경외감에 가슴이 벅차올랐고, 그가 만난 크고 작은 곤경에 사람들은 기꺼이 손잡아 주었다. “20km 정도 갔을 때 길을 놓쳤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길이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멀리 게르가 한 채 보인다. 자전거를 끌고 가서 지도를 펴 들고 아르바이헤르 가는 길을 물었다. ‘한국 사람이세요?’하고 쳐다본다. 몽골 초원 한가운데서 한국말을 듣게 되다니.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마유주도 마시고 국수도 먹고…자꾸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진다.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다사다난 했던 7개월의 여정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막을 내린다. 그는 “바람의 감촉과 땀방울, 긴장과 피로, 손 흔들어 주고 불러 주던 사람들, 수많은 낮과 밤, 낯선 잠자리와 생소한 언어들이 그립다”면서 “하지만 다시 도전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왜?”라는 질문에 “여행은 어떤 스포츠가 아니고 그런 단어 또한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애초부터 목적이 없는 여행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무엇인가 한 가지만 달라졌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이 그의 에필로그다.

 

[기사원문보기]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68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