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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찾아 떠나는 벼룩시장 여행기

2017-08-16


[아시아경제 박소연 기자]여행지에서 만난 비에 너그러운 여행자가 있고, 일정에 차질을 빚을까 번거로워하는 여행자가 있다. 글쓴이는 전자에 가깝다.

비가 한바탕 오고 난 뒤, 더욱 반짝거리는 여행지를 보듬는 세심한 발걸음과 시선이 엿보인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자신만의 말투로 여행지에서의 감상을 오롯이 담아냈다.

이 책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방콕, 도쿄, 태국 등지를 여행하는 동안 만난 플리마켓을 소개한다. 공예품을 파는 예술시장, 농작물을 파는 파머스마켓, 먹거리가 더해진 나이트마켓 등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품고 있는 플리마켓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기다릴 때는 커피가 딱이다.' '더위를 식히기 위한 맥주 한 모금 꼴깍.' 책을 읽다보면 낯선 여행지의 설렘과 낭만이 마음속에서 몽글몽글 피어난다.

 

여행은 여행자의 마음 속에 수많은 감상을 일으킨다. 책에는 글쓴이의 면면이 한지에 잉크가 번지듯이 오롯이 묻어난다. 야시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가게마다 하나 둘 불이 켜지는 모습을 보면서 글쓴이는 어릴 시절의 한 때를 떠올린다.

 

'어릴 적 우리 집은 가로등을 켜는 집이었다. 집 앞 가로등은 어두운 시골길을 비췄다. 저녁을 짓다 불 켜는 것을 깜박하실때면 할머니는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 뛰어나오셨다. "어서어서 불 켜라" 어두울라!" 그럴때면 나는 달려가서는 마치 깜깜한 별에 혼자 불을 켜는 어린 왕자라도 된 듯 장엄하게 스위치를 눌렀다. 감나무 잎 사이로 아른거리던 가로등 불빛.'

 

읽는 사람도 덩달아 추억에 젖어 있다 보면 어느새 그는 우리를 이국의 이름모를 시장으로 데려간다.

 

그를 따라 함께 여행을 하듯 방문하는 플리마켓에는 모두 캐릭터가 있다. 예를들면 '목요일 같은 시장'이 있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문득 달력을 본다. 수요일인 줄 알았는데 목요일이구나. 금요일이라면 더 좋았겠지만 어찌 됐든 벌써 절반을 넘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 왠지 모르게 긴장이 풀리고, 하루를 더 번 듯한 기분에 미소가 번진다. 그래, 하루쯤 더 버텨 볼 만하다. 아트박스는 그런 목요일 같은 시장이었다.' 일상에 찌든 이들에게 우연히 알게 된 '오늘은 목요일'이란 사실은, 참으로 위안이 되는 일이다.

 

그는 플리마켓에서 참으로 '팔랑귀'. 10분만 앉아 있다보면 손이 그득하다. 벌꿀을 먹지도 않으면서, 벌꿀을 뜨는 도구가 너무 예뻐서 한참을 고민하기도 하고, 어느 이국의 소녀가 오렌지색 트렁크에 싣고 나온 핑크색 소꿉놀이를 5천원을 주고 사기도 한다.

 

플리마켓에서는 꼭 합리적인 소비자가 될 필요는 없다. 잠시 서성대면서 이방인의 여유를 느껴 보는 것이다. 여행자에게는 로맨틱하고 설레는 플리마켓이, 그곳에서 시무룩한 표정으로 간식을 굽는 처자에게는 탈출하고 싶은 곳일지도 모른다. 그 처자의 시무룩한 표정은 일상에서의 우리의 표정이기도 하다.

 

플리마켓에서의 '득템'은 여행자 글쓴이의 일상에 활기를 준다. 그곳에서 산 물건들은 여행지의 배경과 냄새, 바가지를 씌우던 상인들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불러온다. 태국의 한 플리마켓에서 산 빈티지 액자는 지금 그녀의 부엌에 걸려 있다. 그 액자 속 예쁜 새댁은 커다란 맥주잔을 들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집안일은 날 목마르게 해요.(House work makes me thirsty)."

 

물건에도 코드가 있는 것 같다. 나와 파장이 맞는, 첫 눈에 반한 물건에 황홀해하고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내려놓는 것. 구매에는 실패했지만 그 달콤하고 황홀한 시간들이 플리마켓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기에, 그녀의 플리마켓 여행은 더욱 로맨틱하다. 플리마켓 탐험을 나설때면 그는 핸드폰을 100% 충전하고 지도와 현금을 챙긴 뒤, 딸과 함께 호텔에 남아 있는 남편에게 비장한 한마디를 남긴다. "내가 길을 잃고 전화하면, 꼭 데리러 와줘."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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