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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부터 온갖 잎사귀 싸 먹은 ‘쌈의 민족’ <선비들의 텃밭 조선의 채마밭>

2022-08-12

고려 때부터 온갖 잎사귀 싸 먹은 ‘쌈의 민족’

선비들의 텃밭 조선의 채마밭- 홍희창 지음

 

 

- 20년간 텃밭 가꾸어온 저자

- 상추 등 선비들 작물 이야기
- 관련 詩·문헌기록 통해 소개
- 채소 재배기술·활용팁 담겨

‘상추는 가난한 선비 같아서/ 담박한 맛이 또한 절로 위로가 되네/ 손을 씻고 밥을 잘 싸서/ 딴 생각 없이 한 끼 식사를 끝마치고/ 아침 내내 배를 어루만지면서/ 감탄하며 도리어 스스로 이르기를/ ‘선생의 오경 상자(통통한 배)는/ 이것으로 가득찼다’고 하네’. 조선 선비 이학규의 시 ‘상추쌈을 먹고’이다. 텃밭에서 금방 따온 상추를 깨끗이 씻어 내온다면 가난한 밥상이라도 고마운 마음으로 받은 선비의 마음이다.

 

텃밭에서 갓 딴 여러 가지 채소를 한 바구니에 담으니 싱그럽고 먹음직하다. 저자는 책에서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을 인용해 고려와 조선 때부터 우리는 이미 ‘쌈의 민족’이라고 전해준다. 책과나무 제공

 

우리 선조들은 어떤 작물을 길러 먹었을지 궁금한 독자에게 ‘선비들의 텃발 조선의 채마밭’을 권한다. 20년 가까이 텃밭을 가꾸는 홍희창 씨가, 수십 종 채소를 가꾼 경험에 식물학과 인문 지식을 더해 쓴 책이다. 전작 ‘이규보의 화원을 거닐다’에서 고려 시대 식물 인문학 이야기를 들려준 데 이어 두 번째 이야기이다.

저자는 2003년 봄, 주말농장에서 텃밭을 시작했다. 부산은행을 퇴직하고 밀양 삼랑진으로 귀촌해 텃밭 ‘터앝’을 가꾸고 있다. 2015년 조경기사 자격증을 딸 만큼 식물을 심고 키우고 가꾸는 것을 좋아한다. 수십 종 채소와 100여 그루 나무를 키우는 이야기는 ‘터앝을 가꾸며’라는 제목의 글로 120회에 걸쳐 저자가 참여하는 밴드와 은행 동우회 카페에 연재했다.

이 책에는 선비들이 채소 등을 읊은 시, 작물과 관련된 문헌기록과 자료가 풍성하다. 자료도 흥미롭지만, 하나하나 찾아내 소개하는 저자의 정성이 대단하다. 텃밭을 가꾸는 마음이 이렇게 알뜰 하구나 짐작이 된다. 선비의 텃밭은 물론 서양에서 텃밭을 가꾼 저명 인사와 도시 텃밭, 우주텃밭과 남극 세종기지 실내농장까지 소개한다. 영화 ‘마션’에서 화성에 홀로 남은 주인공이 감자를 심던 모습을 이야기하고, 남극 세종기지에서 장기간 보관이 어려운 채소를 직접 키우는 상황도 말해준다. 농경의 역사가 시작된 시기는 까마득하지만, 현재에도 새로 시작되는 곳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은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복원한 조선 시대 온실(세미원).
저자는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만물문’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원나라 사람 양윤부의 시에, ‘고려 식품 중에 맛 좋은 생채를 다시 이야기하니 향기로운 여러 채소를 모두 수입해 들여온다’고 하고, 스스로 주를 달기를 ‘고려 사람은 생나물로 쌈을 싸 먹는다’고 하였다. 조선 풍속은 지금까지도 오히려 그러해서 소채 중에 잎이 큰 것은 모두 쌈을 싸서 먹는데, 상추쌈을 제일로 여기고 집집마다 심으니, 이는 쌈을 싸서 먹기 위한 까닭이다.” 잎이 큰 것은 모두 쌈을 싸서 먹었다니 역시 우리가 쌈을 좋아하는 내력이 있었다.

선비 이옥이 상추쌈 먹는 과정을 쓴 대목은 입에 침이 절로 돈다. “왼손을 크게 벌려 승로반(구리쟁반)처럼 만들고, 오른손으로 두텁고 큰 상추를 골라 두 장을 뒤집어 손바닥에 펴 놓는다. 이제 흰 밥을 취해 큰 숟가락으로 퍼서 거위알처럼 둥글게 만들어 상추 위에 올려놓되….” 쌈을 처음 싸서 먹는 외국 관광객에게 ‘고려,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쌈 싸 먹기 깨알 정보’라고 알려주고 싶다.

상추뿐이랴. 저자는 선비가 심고 가꾸었던 작물을 하나하나 들어가며 연관된 이야기와 재배법 등을 재미있고 친절하게 알려 준다. 우리가 매일 먹는 채소에 관한 인문 지식과 선비가 가꾸었던 텃밭의 역사적 이야기도 함께 푼다. 채소 재배 기술과 활용법 팁도 담겼다. 텃밭이 있는 사람은 바로 적용해 볼 수 있겠다.

채소와 꽃을 심고 흙을 만지고 있으면, 복잡했던 머리도 차분해지고 마음도 안정된다. 코로나 시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반려식물’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집안에서 화분을 키우거나 베란다를 작은 정원으로 만들고, 옥상에 텃밭을 꾸미거나 주말농장을 찾는다. 아주 옛날, 농사꾼이 아닌 선비들도 텃밭을 가꾸고 채소를 재배했을 때부터 그 일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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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220812.22014003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