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 윤리가 (동식물과 토양, 물 같은) 이들 ‘자원’의 개조와 관리 및 이용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대지 윤리는 그들도 존속할 자격이 있음을, 그리고 좁은 구역이나마 자연 상태로 존속할 수 있음을 천명한다. (결론적으로 대지 윤리의 관점에서 볼 때,) 생명 공동체의 통합성(온전성) 과 안정성, 그리고 아름다움을 보전하는 데 기여한다면 그것은 옳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그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레오폴드가 궁극적으로(최종적으로) 개체론적 입장이 아니라 공동체 자체에 대한 존중과 중요성을 중시하는 전체론적(전일주의적) 입장을 채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대지 윤리는 생명 공동체 자체를 도덕적 배려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개체들) 에 대한 배려가 ‘대지 피라미드’라는 유기적 체계, 즉 생명 공동체의 통합성과 안정성, 그리고 아름다움의 보전에 우선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지 윤리에서 중요한 것은 구성원 각자의 복지가 아니라 대지 공동체의 전체 건강이기 때문이다. (55-56페이지)
아직 삶을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 - 공자
서양 사상과 달리 도가�도교를 비롯한 유학�유교의 동양 사상은 현세 지향적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유일신을 중심으로 현세의 삶은 물론, 죽음과 내세의 삶까지 설명하려는 서양 종교와 달리 동양 사상에서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덜 언급되어 있다. 이는 죽음 자체에 대해 공자가 『논어』에서 적극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죽음에 관한 공자의 생각은 감히 죽음에 대해 묻는 제자 자로의 물음에 “아직 사람을 섬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귀신을 섬길 수 있으며, 아직 삶을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라는 답에 잘 드러나 있다. 공자의 이 말은 그가 죽음을 소홀히 했다거나 부정했다는 뜻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죽음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삶을 도덕적으로 완성하고자 하는 태도라는 뜻이다. 공자의 “아침에 도(道) 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63-64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