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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봉선생유고전

    • 저자
      이주병
      페이지
      648p
      판형
      188 * 257 mm
      정가
      35,000원
    • 출간일
      2017-10-01
      ISBN
      979-11-5776-481-5
      분류
      인문/사회/과학
      출판사
      책과 나무
    • 판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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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봉선생유고는 조선조 전기 문신이며 학자인 이극감(李克堪)의 유고집이다. 남긴 어록(語錄)과, 수많은 저서들이 있었음에도, 갑자사화에 폭군(暴君) 연산(燕山)의 명에 의해, 모두 분서(焚書)되고, 유집이 다 없어졌던 것을 1969년 조선왕조실록과 제현(諸賢)의 찬사(贊辭) · 야사(野史) 중에서 수집하여 17대손 휘재(徽載)가 서문(序文)을 쓰고, 권말(卷末)에 14대손 병순(秉巡)이 발문(跋文)을 붙여, 석인본(石印本) 2권(二卷) 1책(一冊)으로 편집간행(編輯刊行)하였다. 그러나 자료가 빈약하고, 순한문으로 되어 있어 독자들이 읽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를 문중사학을 연구하는 주병(柱昺)이 번역하고 선생의 행적(行蹟)을 찾아 자료를 보유하면서 세분화시켜 시(詩), 만사(挽詞), 계(啓), 사(賜), 사품(賜品), 소(疏), 전문(箋文), 교서(敎書), 졸기(卒記), 행장(行狀), 비문(碑文), 연보(年譜), 잡저(雜著), 기타자료(其他資料), 입조기사(入朝記事) 등으로 재구성하여 편집 간행하였다.
시(詩)는 명시로 전해져 오는 몇 편과 특히 사육신(死六臣)에 대하여 읊은 것이 돋보인다. 또한 당시 많은 편찬에 참여하며 느낀 바를 올린 글과 반포문, 사보(四輔)에 선임되어 당시의 정치적 논쟁에 대하여 올린 글들을 담고 있고. 그 외 , <북정록서(北征錄序)>등은 사료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입조기사(立朝記事)”는 조정에서의 일들을 실록에서 날짜순으로 뽑은 것으로, 행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따라서 이 유고는 조선조 전기 특히 세조대를 연구하는 후학들에게 당시 조정의 정책, 문화 등을 이해하고 참고하는데 많은 자료와 정보를 제공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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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편저자 이주병(李柱昺)
진탁 이주병(眞卓 李柱昺)은 충북 괴산에서 태어났다.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에서 공기업고급경영자과정을 수료하였다. 공기업인 건설공제조합에서 30여년간 근무하면서 서울삼성 · 대구 · 부산지점장등을 거쳐, 건설경영연수원장을 역임하고 정년퇴직했다. 현재는 광주이씨 대종회 사적심사위원, 광주이씨 문경공파종회 총무·문화유사, 동고상공종회 문화유사, 경기도불천위문중협의회 자문위원으로 있으며, 전통역사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문중사학(門中史學)을 연구하고 있다. 편저에 “흐르는 눈물만이 위로가 되네”와 “보첩총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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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유적지 _ 01
· 일러두기 _ 22
· 축간사 _ 24
· 二峯先生遺稿 序 (이봉선생유고 서) _ 27
■ 詩 _ 035
· 次大同江樓船韻 (차대동강루선운)
· 淡淡亭 (담담정)
· 議政府蓮亭 其一 (의정부 연정 1)
· 又詠 議政府蓮亭 其二 (의정부 연정 2)
· 附原韻 (부원운)
· 寄舍兄嶺伯營 (기사형영백영)
· 題安州萬景樓 (제안주만경루)
· 唱和詩 其一 (창화시 1)
· 賦詩以進 其一 (부시이진 1)
· 奉和御製詩 卽席口號 其一 (봉화어제시 즉석구호 1)
· 奉和御製詩 卽席口號 其二 (봉화어제시 즉석구호 2)
· 登漢江樓 (등한강루)
· 賦詩以進 其二(부시이진 2)
· 唱和詩 其二(창화시 2)
· 春坊入直 寄德輿 (춘방입직 기덕여)
· 雪後有興 (설후유흥)
· 麻浦 (마포)
· 次李德輿韻 (차이덕여운)
■ 挽詞 _ 059
· 挽李廣城克堪 (만이광성극감)
· 哭同年李判書克堪 (곡동년이판서극감)
· 廣城君李參判克堪挽章 (광성군이참판극감만장)
· 李議政 仁孫 妻氏挽詞 (이의정 인손처씨 만사)
■ 啓 _ 065
· 臺諫罪赦免請願啓 (대간죄사면청원계)
· 冠服吉凶議啓 (관복길흉의계)
· 竝畜妻喪事論議啓 (병축처상사논의계)
· 社倉之法議啓 (사창지법의계)
· 文科加額取節目論議啓 (문과가액취절목논의계)
· 鄭氏上言論議啓 (정씨상언논의계)
· 言官辭職上啓 (언관사직상계)
· 不?人望改正請願啓 (불협인망개정청원계)
· 避嫌請願啓 (피혐청원계)
· 高麗全史印刊請願啓 (고려전사인간청원계)
· ?隷諭請願啓 (조례유청원계)
· 分頒錄啓 (분반록계)
· ?盜啓 (미도의 계)
· 文臣宰樞賦詩 (문신재추부시)
· 賦詩以進 (부시이진)
· 請置於法啓 (청치어법계)
· 初學字會以諺文註啓 (초학자회이언문주계)
· 製詩以進 (제시이진)
· 請停親臨啓 (청정친임계)
· 斷筋法啓 (단근의 법계)
· 請停官布貿穀啓 (청정관포무곡계)
· 設酌作詩以進 (설작작시이진)
· 咸吉道都體察使 已擧事啓 (함길도도체찰사 이거사계)
· 接客移病罷黜啓 (접객이병파출계)
· 審牧場啓 (심목장계)
· 畢貿易啓 (필무역계)
· 造增船?轉運啓 (조증선소전운계)
· 造增船?轉運再啓 (조증선소전운재계)
· ?儲倉錢糧律論啓 (풍저창전량율론계)
■ 賜 _ 117
· 爲世子侍學 (위세자시학)
· 用法不當如是歸家待命 (용법불당여시귀가대명)
· 國朝寶鑑撰述御示 (국조보감찬술어시)
· 御製訓辭十章幷序賜 (어제훈사십장병서)
· 撰前代女訓以進 (찬전대여훈이진)
· 治平要覽醫方類聚校正御書示
(치평요람·의방유취교정어서시)
· 興學育材之方議示 (흥학육재지방의시)
· 讀大學次讀論語 (독대학차독논어)
· 世子付汝 (세자부여)
· 製進御札諭示 (제진어찰유시)
· 預運籌北征也 (예운주북정야)
· 製進御札諭示 (제진어찰유시)
· 更校北征錄 (경교북정록)
· ?校北征錄 (수교북정록)
· 世子學問進步示 (세자학문진보시)
· 卿世子之師 (경세자지사)
· 戶軍籍改正示 (호군적개정시)
· 爲都鎭撫司饔堤調 (위도진무사옹제조)
· 汝之賓客今可進酒 (여지빈객금가진주)
· 故特授刑官 (고특수형관)
· 故今學射 (고금학사)
■ 賜品 _ 149
· 定佐翼功 (정좌익공)
· 賜尹奇家于 (사윤기가우)
· 亂臣緣坐婦女賜 (난신연좌부녀사)
· 賜鷹一連 (사응일련)
· 賜表裏一套 (사표리일투)
· 賜鞍具馬一匹 (사안구마일필)
· 賜宣? (사선온)
· 歲賜米二十石 (세사미이십석)
· 賜馬一匹 (사마일필)
· 賜油紙席, 扇子, 拂子 (사유지석, 선자, 불자)
· 賜琵琶 (사비파)
· 上命醫治之 齎宮?幷肉 (상명의치지 재궁온병육)
■ 疏 _ 167
· 宦官封君不可疏 (환관봉군불가소)
· 避嫌請願疏 (피혐청원소)
· 辭職上書 (사직상서)
· 還給辭狀 (환급사장)
· 佛堂撤去疏 (불당철거소)
· 佛堂撤去再疏 (불당철거재소)
· 佛堂撤去三疏 (불당철거삼소)
· 佛堂撤去四疏 (불당철거사소)
· 辭職上書 (사직상서)
· 辭職再上書 (사직재상서)
· 按八道都觀察使時辭職上疏
(안팔도도관찰사시사직상소)
· 按八道都觀察使時辭職再上疏
(안팔도도관찰사시사직재상소)
· 按八道都觀察使時辭職三上疏
(안팔도도관찰사시사직삼상소)
· 治平要覽校正上書 (치평요람교정상서)
■ 箋文 _ 201
· 世宗實錄 總序 (세종실록 총서)
· 文宗實錄 總序 (문종실록 총서)
· 舍人司題名記 (사인사제명기)
· 檢詳司題名記 (검상사제명기)
· 進高麗史節要箋 (진고려사절요전)
· 御製訓辭跋 (어제훈사발)
· 北征錄序 (북정록서)
· 王世子謁廟儀 (왕세자 알묘의)
· 行回門禮如儀隨之 (행회문례여의수지)
· 翠露亭觀稼序 (취로정관가서)
■ 敎書 _ 247
· 原從功臣 二等 錄勳 敎書 [李仁孫]
(원종공신 2등 녹훈 교서)
· 推忠佐翼功臣 三等 策勳敎書
(추충좌익공신 3등 책훈교서)
■ 卒記 _ 253
· 右議政 李仁孫 卒記 (우의정 이인손의 졸기)
· 廣城君 李克堪 卒記 (광성군 이극감의 졸기)
■ 行狀 _ 259
· 封廣城君 諡文景公(諱 克堪) 行狀
[봉광성군 시문경공(휘 극감) 행장]
■ 碑文 _ 269
· 刑曹判書廣城君文景公(諱 克堪) 墓碑文
·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行正憲大夫刑曹判書廣城君諡文景公二峯李先生 神道碑銘 幷書
· 三子碑文 (3자 비문)
■ 年譜 _ 315
· 二峯先生 年譜 (이봉선생 연보)
■ 雜著 _ 357
· 舍人司 (사인사)
· 淡淡亭 (담담정)
· 廣州牧 人物 (광주목 인물)
· 高麗 李集 (고려 이집)
· 陳遁村先祖被誣事實箚
(둔촌선조의 피무사실· 진술하는 차자)
· 忠州牧 塚墓 (충주목 총묘)
· 南浦 (남포)
· 萬景樓 (만경루)
· 高麗史 (고려사)
· 高麗史節要 (고려사절요)
· 東國諸家史類 (동국제가사류)
· 議政書狀官 (의정서상관)
· 李克堪 (이극감)
· 說部 (설부)
· 詔使 (조사)
· 議政府 (의정부)
· 東人載記 (동인재기)
· 集賢殿 (집현전)
· 登漢江樓 十首 (등한강루 10수)
· 五子登科 (오자등과)
· 門閥之盛 廣州李氏爲最 (문벌지성 광주이씨위최)
· 國士 李廣城 (국사 이광성)
· 巨家大族 (거가대족)
· 九代文科 (9대문과)
· 十代登文科 (10대등문과)
· 國朝寶鑑 總敍 (국조보감 총서)
· 訓辭十章賜 (훈사10장사)
· 製詩以進 (제시이진)
· 撰女訓 (찬여훈)
· 治平要覽印頒上書 (치평요람인반상서)
· 育材共議 (육재공의)
· 掃其巢? (소기소용)
· 世子爲腐儒 (세자위부유)
· 牧場提調 (목장제조)
· 爲刑曹判書 (위형조판서)
· 丁卯重試 (정묘중시)
· 重試對策 (중시대책)
· 撫松軒 年譜 (무송헌 연보)
· 建州征討錄 (건주정토록)
· 訓辭後序 (훈사후서)
· 御製詩序 (어제시서)
· 詩意 (시의)
· 世系篇 (세계편)
· 東皐年譜 (동고연보)
· 先生 讚辭 (선생 찬사)
· 世說 (세설)
■ 其他資料 _ 427
· 族譜本文 (광주이씨 문경공파 파보 을미보)
· 李克堪 一 (이극감1)
· 李克堪 二 (이극감2)
· 文孝祠 (문효사)
· 文孝祠 上樑文 (문효사 상량문)
· 文景公 遺虛址 (문경공유허지)
· 二峯先生遺稿 (이봉선생 유고. 1969년 발행)
· 二峯先生遺稿序 (이봉선생 유고서. 1969년 발행)
· 二峯先生遺稿跋 (이봉선생 유고발. 1969년 발행)
■ 入朝記事 _ 445
· 朝鮮王朝實錄 (조선왕조실록)
· 承政院日記 (승정원일기)
· 이봉선생 유고 후기 _ 641
· 참고문헌 _ 642
· 소목도 _ 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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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개

 

“‘경세제민의 국사라 불리던 조선조 전기 문신 이극감의 유교집

세조대 조정의 정책·문화 등을 이해하고 참고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대의(大意)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 지키는 절의(節義)가 솟구치고, 기량(器量)이 홍대(弘大)하며, 광명정대(光明正大)하여 세인(世人)들이 경세제민의 국사(經世濟民之國士)”라 칭하였다는 자. 그는 바로 형조판서까지 지낸 이봉 선생, 이극감이다. 당시에 그의 집안은 5형제와 이들의 아들들 9명이 문과에 급제하고 조정에 출사하여, 성종대(成宗代)에는 팔극조정(八克朝廷)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조선조 전기 최고의 가문이었다.

이 책은 조선조 전기 문신이며 학자인 이극감(李克堪)의 유고집이다. 남긴 어록(語錄)과 수많은 저서들이 있었음에도, 갑자사화에 폭군(暴君) 연산(燕山)의 명에 의해 모두 분서(焚書)되고 유집이 다 없어졌던 것을, 1969년 조선왕조실록과 제현(諸賢)의 찬사(贊辭야사(野史) 중에서 수집하여 17대손 휘재(徽載)가 서문(序文)을 쓰고, 권말(卷末)14대손 병순(秉巡)이 발문(跋文)을 붙여, 석인본(石印本) 2(二卷) 1(一冊)으로 편집간행(編輯刊行)하였다. 그러나 자료가 빈약하고, 순한문으로 되어 있어 독자들이 읽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를 문중사학을 연구하는 주병(柱昺)이 번역하고 선생의 행적(行蹟)을 찾아 자료를 보유하면서 세분화시켜 시(), 만사(挽詞), (), (), 사품(賜品), (), 전문(箋文), 교서(敎書), 졸기(卒記), 행장(行狀), 비문(碑文), 연보(年譜), 잡저(雜著), 기타자료(其他資料), 입조기사(入朝記事) 등으로 재구성하여 편집 간행하였다.

()는 명시로 전해져 오는 몇 편과 특히 사육신(死六臣)에 대하여 읊은 것이 돋보인다. 또한 당시 많은 편찬에 참여하며 느낀 바를 올린 글과 반포문, 사보(四輔)에 선임되어 당시의 정치적 논쟁에 대하여 올린 글들을 담고 있고, 그 외 조증선소전운계(造增船艘轉運啓), 북정록서(北征錄序)등은 사료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특히 입조기사(立朝記事)”는 조정에서의 일들을 실록에서 날짜순으로 뽑은 것으로, 당시의 행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조선조 전기, 특히 세조대를 연구하는 후학들에게 당시 조정의 정책, 문화 등을 이해하고 참고하는 데 이 책이 많은 자료와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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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경세제민의 국사’라 불리던 조선조 전기 문신 이극감의 유교집
세조대 조정의 정책·문화 등을 이해하고 참고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대의(大意)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 지키는 절의(節義)가 솟구치고, 기량(器量)이 홍대(弘大)하며, 광명정대(光明正大)하여 세인(世人)들이 “경세제민의 국사(經世濟民之國士)”라 칭하였다는 자. 그는 바로 형조판서까지 지낸 이봉 선생, 이극감이다. 당시에 그의 집안은 5형제와 이들의 아들들 9명이 문과에 급제하고 조정에 출사하여, 성종대(成宗代)에는 팔극조정(八克朝廷)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조선조 전기 최고의 가문이었다.
이 책은 조선조 전기 문신이며 학자인 이극감(李克堪)의 유고집이다. 남긴 어록(語錄)과 수많은 저서들이 있었음에도, 갑자사화에 폭군(暴君) 연산(燕山)의 명에 의해 모두 분서(焚書)되고 유집이 다 없어졌던 것을, 1969년 조선왕조실록과 제현(諸賢)의 찬사(贊辭)·야사(野史) 중에서 수집하여 17대손 휘재(徽載)가 서문(序文)을 쓰고, 권말(卷末)에 14대손 병순(秉巡)이 발문(跋文)을 붙여, 석인본(石印本) 2권(二卷) 1책(一冊)으로 편집간행(編輯刊行)하였다. 그러나 자료가 빈약하고, 순한문으로 되어 있어 독자들이 읽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를 문중사학을 연구하는 주병(柱昺)이 번역하고 선생의 행적(行蹟)을 찾아 자료를 보유하면서 세분화시켜 시(詩), 만사(挽詞), 계(啓), 사(賜), 사품(賜品), 소(疏), 전문(箋文), 교서(敎書), 졸기(卒記), 행장(行狀), 비문(碑文), 연보(年譜), 잡저(雜著), 기타자료(其他資料), 입조기사(入朝記事) 등으로 재구성하여 편집 간행하였다.
시(詩)는 명시로 전해져 오는 몇 편과 특히 사육신(死六臣)에 대하여 읊은 것이 돋보인다. 또한 당시 많은 편찬에 참여하며 느낀 바를 올린 글과 반포문, 사보(四輔)에 선임되어 당시의 정치적 논쟁에 대하여 올린 글들을 담고 있고, 그 외 〈조증선소전운계(造增船?轉運啓)〉, 〈북정록서(北征錄序)〉 등은 사료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특히 “입조기사(立朝記事)”는 조정에서의 일들을 실록에서 날짜순으로 뽑은 것으로, 당시의 행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조선조 전기, 특히 세조대를 연구하는 후학들에게 당시 조정의 정책, 문화 등을 이해하고 참고하는 데 이 책이 많은 자료와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이다.
저자 이극감(李克堪)
이극감(李克堪)의 자는 덕여(德輿)이고, 호는 이봉(二峰)이며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둔촌선생(遁村先生) 이집(李集)의 증손으로, 우의정을 지낸 충희공 인손(忠僖公 仁孫)의 둘째아들이며, 영의정 광릉부원군 극배(廣陵府院君 克培)의 아우이다. 당시에 그의 집안은 5형제와 이들의 아들들 9명이 문과에 급제하고 조정에 출사하여, 성종대(成宗代)에는 팔극조정(八克朝廷)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조선조 전기 최고의 가문이었다. 그는 18세에 문과에 급제(及第)하여, 21세에 중시(重試)에 또 급제하고, 집현전 학사(集賢殿學士)로서 지제교(知製敎)와 세자(世子)를 보도(輔導)하는 책임을 겸하였다. 30세에 이조참의(吏曹參議), 34세에 도승지(都承旨)에 이어, 곧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오르고, 36세에 팔좌(八座)의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올랐다. 학문(學問)이 고명(高名)하고, 문장(文章)과 풍절(風節)이 용동(聳動)하여, , , 를 찬술(撰述)하고, , 등을 편수(編修)·교정(校正)간행하였으며, , 등 제편(諸篇)을 찬진(撰進)하였다. 그 외에도 손수 지은 시문(詩文)을 포함한, 많은 글들이 전해왔을 터이지만,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어서(御書)와 저서(著書)를 모두 몰수당하였으며, 그 후에도 정쟁(政爭)의 소용돌이 속에서, 길이 보관되지 못하고, 소실(消失)되어 전해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행한 업적과, 지은 시문(詩文)들이 각 실록, 여지승람, 동문선, 용재총화, 연려실기술, 명인시선 등 사기(史記)에 나타나는 게 있어, 이를 모아 1969년 후손들이 이봉선생유고(二峯先生遺稿)를 간행하였다.
이극감은 대의(大意)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 지키는 절의(節義)가 솟구치고, 기량(器量)이 홍대(弘大)하며, 광명정대(光明正大)하여 세인(世人)들이 그를 대(對)함에 “경세제민의 국사(經世濟民之國士)”라 칭하였다. 또한 집현전 학사로 있을 때부터 세자보도(世子輔導)의 책임을 겸하였는데, 이는 병(病)으로 관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세조는 그에게 세자의 교육을 맡기면서 “내가 세자(世子)를 너에게 부탁하니, 네가 능히 잘 보필(輔弼)하면, 나는 걱정이 없겠다."하며 “경은 세자(世子)의 스승이라 내가 믿고 중히 여기는 바이다.” 라고 하였다. 병으로 향년 42세에 졸(卒)하였으며, 추충좌익공신(推忠佐翼功臣)으로 광성군(廣城君)에 훈봉되고, 문경공(文景公)의 시호(諡號)를 받았으며, 중종반정 후 의정부 좌의정의 증직을 받았다.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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