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꽃이 살살 부는 봄바람에 조금씩 흔들린다. 길가에 쭉 늘어선 벚꽃 사이로 그 아이 얼굴이 보이는데, 순간 이상하게 친구들의 시끄러운 대화 소리도, 지나가는 차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22p
달리는 버스 안, 갑자기 창밖 모든 풍경이 새삼 아름답게 보인다. 암울했던 내 인생에 처음으로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벚꽃이 진 나뭇가지에는 여름에 우리에게 그늘을 선물해 줄 나뭇잎이 조금씩 손짓하고 있었고, 그 손짓은 나를 향하는 것 같아 기분이 더 좋아진다. 37p
의자에 앉아 책은 폈지만, 펼친 국사책을 보고 있노라니 반가사유상 얼굴에 준호 얼굴이 비친다. 다음 장을 넘겨도 또 그다음 장을 넘겨도… 온통 준호의 웃는 얼굴뿐이다. 이런 불상사가 일어 날 줄 알았다. 40p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건물 틈 사이로 보이는 빛나는 별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난다.‘첫날부터 이게 뭐하는 건지…. 진짜 이런 일들이 반복될까?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나도 저기 저 별처럼 빛나고 싶은데…. 그것뿐인데….’ 100p
여기저기 단풍이 빨갛게 물들고 은행잎도 노랗게 물들어 바람에 흩날리고 우리의 사랑도 단풍처럼 물들어 간다.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걸 해 봤고 그런 사랑은 힘든 나를 위로해 주고 아픈 나를 치유해 주었다. 항상 이 사랑에 감사하며 살고 싶어진다. 147p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고 그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눈이 어찌나 슬프게 내리는지 또 가슴이 먹먹해 온다. 눈은 내 어깨에 살포시 앉았다가 어느새 눈물이 되어 내 옷에 스며들어 사라져 버린다. 239p
가슴속에 밀려드는 슬픔이 내 온몸을 지배하고 있는데 준호가 내 머리에 입을 맞춘다. 그의 입맞춤은 슬픔을 갈기갈기 찢어 내듯 깊이 파고들었고, 나는 준호의 품에 안겨 가만히 준호의 숨결을 느낀다. 243p
행복의 기준은 객관적이 아닌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좋은 자동차에 큰 집에 살며 돈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닐 것이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다 불행한 것도 아닐 것이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살든 그곳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면 그것이 행복이지 다른 게 행복이겠나? 289p
“나… 이날만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몸이 아프면 병원도 데리고 가고 간호도 내가 다 할게. 마음이 아프면 내가 만져 줄게. 누나 아프지 않게 내가 뭐든 할게. 누나가 옆에 없는 내 삶은 상상해 본 적 없어. 지수야! 나 한 번만 다시 봐주면 안 될까? 너를 만나러 오지 못했던 그 수많은 날 동안, 내 눈은 고통의 눈물로 다 짓물렀고 보고 싶은 마음을 참아 내느라 수없이 두드렸던 가슴은 새카맣게 멍이 들었어.” 33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