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애불이 위치한 곳은 지대가 높아서 저 멀리 보문들판과 낭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전망이 아주 좋다. 또한, 바로 아래에는 ‘경북 천년숲정원’이 있어 아름다운 수목원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불상 아래쪽이 급경사로 되어 있어 하늘에 떠 있는 느낌을 갖게 하기도 한다. 대좌의 연꽃이 연하게 처리되어 있어 이런 느낌을 더 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마치 높은 곳에서 서라벌 중생들을 굽어보고 계시는 부처님을 보는 듯하다. 큰 불상도 아니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모습과 앞에 펼쳐진 광경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져 한참을 머물게 하는 불상이다. ( 32쪽)
마애석가여래좌상 바로 위쪽에 있는 냉골 정상에는 금송정이 있었던 터가 있다. 금송정은 신라 때 옥보고가 거문고를 탔던 곳이다. 옥보고는 신라 경덕왕 때의 음악가로서 거문고를 연구했던 6두품 귀족 출신으로, 금송정에서 거문고를 탄 후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되어 있다. 금송정 옆에 있는 너럭바위에서는 전망이 좋아 경주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이 너럭바위는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며 놀았다고 해서 ‘바둑바위’라 부른다. 신선 사상은 도교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금송정 터와 바둑바위는 도교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사실 경주 남산은 147개의 절터가 있을 정도로 불교를 상징하는 곳이다. 따라서 도교의 공간인 바둑바위 일대는 불교와 도교가 융합되는 의미 있는 장소가 된다. ( 105쪽)
경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황룡사지는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하다. 하지만 미탄사지는 처음 들어 보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경주 외곽에 있어서 그럴까? 아니다. 경주 시내에 있다. 그것도 황룡사지와 울타리를 맞대고 바로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절터이다. 지금은 폐사지가 된 허허벌판에 3층 석탑만 홀로 서 있다. 미탄사지 3층 석탑은 찾는 이가 거의 없지만, 위풍당당한 기품 때문에 외롭지 않아 보이는 탑이다. 자존심이 강해서일까? 아니면 당당한 기품 때문일까? (186 쪽)
신라 왕릉들은 경주 시내에 소재하고 있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진평왕릉은 예외적으로 보문들판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대부분의 왕릉들은 주변이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다소 평온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진평왕릉은 들어가는 길목에 오래된 고목들이 든든하게 지키고 서 있으며, 앞쪽으로는 시야가 트여 보문들판이 펼쳐진 모습을 볼 수 있어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주변에는 여러 종류의 고목들이 제각기 자태를 뽐내며 함께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진평왕릉은 한적한 들판과 고목들 때문이지 몰라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심신이 지칠 때 찾아가면 위로가 되는 곳이다. ( 194쪽)
봄이 되어 벚꽃이 피게 되면 경주 시내는 전체가 화려한 벚꽃으로 꽃잔치가 벌어진다. 그리고 벚꽃 엔딩이 되고 나면 나원리 5층 석탑에는 풍성한 겹벚꽃이 화려하게 피기 시작한다. 하지만 외진 곳이라 관광객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겹벚꽃이 필 때의 나원리 5층 석탑을 더욱 좋아한다.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혼자만의 꽃잔치를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원백탑과 겹벚꽃의 어우러짐이 너무 좋다. ( 2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