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남자가 그 막강한 초자아의 힘을 이겨 내고 불륜을 향유할 수 있다면 그는 초인이거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나 요즘 그런 절대적 힘을 가진 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초자아를 이겨 먹을 정도로 강한 욕망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느냐는 것이지요. 이 세상의 지위나 명예, 재물을 무의미하게 여기고 그동안 쌓아 두었던 품위와 허울을 한순간에 벗어던질 수 있는 힘, 그동안 힘들여 쌓아 놓았던 공력을 일거에 날려 버릴 수 있는 이 힘, 이것이 바로 독자들의 이 ‘유아성욕’을 일깨웠기 때문이 아닐까요? (44페이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영어로 폴인 러브(fall in love)라고 합니다. 직역하면 사랑으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미끄러져 떨어진 것입니다. 함정에 빠진 것일 수도 있구요. 사고가 난 것입니다. 사랑에 빠지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모든 나르시시즘도 상대방에게 모두 주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가 없어집니다. 그럼 뭐가 될까요? 허깨비가 됩니다. 그게 죽음이지요. 프로이트는 인간이 유일하게 나르시시즘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 바로 여기에만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51페이지)
그것은 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불가능한 그것을 끊임없이 욕망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간의 비극적인 실존인 것이구요. 히스테리 여성은 향락을 거부하면서까지 이 비극적인 실존을 수용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남자는 이것을 수용하지 못하지요. 줄 수 없는 것을 주려고 하고 받을 수 없는 것을 받으려 하는 것은 보통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아니하고 그 어떤 것으로도 메울 수 없는 것입니다. (168페이지)
우리는 어쩌면 히스테리 환자들처럼 두려움에 떠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환상을 동원하며 우리 존재의 붕괴를 막아 내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불안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히스테리 환자처럼 지나치게 욕망하고 지나치게 거부(억압)합니다. 의식과 무의식의 사랑과 미움의 유연한 왕래와 타협도 없습니다. 히스테리 환자처럼 분열 속에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유아적이 되고 환상이 없이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172페이지)
때로 우리의 삶의 색깔이 너무 단조롭고 같은 것의 반복만 있을 때, 매일 같은 곳을 출근하여 비창조적인 같은 일을 반복한다면 삶이 무료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제일 견디지 못하는 것이 바로 재미없는 것입니다. 뭔가가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터널이 너무 길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도대체 이 터널을 언제나 지나가나 하며 따분해하지요. 이때 삶의 지루함을 해소할 수 있는 아주 손쉬운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외도가 아닐까요? 외도는 짜릿하고 스릴이 있습니다. 가슴이 뛰고 삶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지요.(255페이지)
외양적으로는 강간이나 윤간은 분명히 권력을 가진 자가 행하는 성추행보다는 무거워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힘없는 자가 성충동을 해결하는 방법은 약한 자를 강압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겠지요. 이들이 집단적으로 윤간을 한다면 힘없는 자들에게는 죄책감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덜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약자가 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물리적 강제나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힘과 권력을 가진 자는 굳이 이렇게 할 이유가 없겠지요. (301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