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파리의 세상이었다. 피 냄새를 쫓는 똥파리 떼만 무리를 지어서 인적이 끊긴 푸줏간 거리를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똥파리 떼만 무더위가 열어준 자신들의 세상을 만끽했다. 피 냄새 가득한 현방거리는 똥파리의 세상이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시원한 산들바람이 그리웠다. 문득 치마바위가 떠올랐다. 여립과 바위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서로의 바람을 나누었던 추억이 생각났다.
여립은 말했었지. 대동계를 통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 죽어가는 조선의 숨통을 틔우고 싶다고. 새로운 바람이 소삭하는 산들바람이든 세상을 뒤바꾸는 역풍이든 아무 상관없다고.
한데, 그 바람은 피바람이 되어 조선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지울 수 없는 핏빛 옹이를 조선의 대지와 서로의 심장과 모두의 마음에 살뜰하게 조져 박았다. 틀어박혀 살가워진 옹이들이 서러워서 웃음이 났다. 잃을 것도 없던 인생이 모든 것을 잃자 덧없는 인생만이 남았다. 덧이라도 옥정과 함께한다면 좋으련만. 옥정이 곁에 있어야 찰나라도 복되련만. 이제 무너진 희망이 기댈 곳은 고부밖에 없었다. 고부로 길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