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녹차 가운데 커피와 보이차의 강하고 특색 있는 향을 제압할 만한 차향을 내는 녹차를 찾아보기 어렵다. 달리 말하자면 녹차의 향이 갖는 특색은 강한 자극성이 아니라 은은한 자연성이다. 선대 차인들의 단편적인 차시나 『다부(茶賦)』와 같은 본격 다도론적 차시에서는 차향을 말하되 말초적 오감을 자극하는 기호(嗜好) 요소로서가 아니라 한결같이 우주의 정기를 전해주는 ‘다신(茶神)’으로서 의미부여하고 있다. 즉 향(香)을 기준으로 구별하자면 커피와 보이차류의 정체성은 기호음료수이고 녹차의 정체성은 ‘수양의 매질(媒質)’이라고 할 수 있다.
(19쪽)
차에는 카테킨, 테아닌, 카페인, 향기성분, 비타민, 당류 등 다양한 성분이 있지만 차계와 학계에서는 차의 3대 성분으로 카테킨(티폴리페놀)·테아닌(아미노산)·카페인을 꼽는다. 따라서 제다 과정에서 이 3대 성분을 어느 정도 어떤 양상으로 보전 또는 변화시키느냐가 제다의 관건이자 완제된 차의 종류를 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차의 3대 성분 중 카테킨(티폴리페놀)은 건강증진·면역력강화·노화방지 등의 효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티폴리페놀은 산화력이 강해서 몸 안의 활성산소를 제거해 주는 항산화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즉 차를 ‘건강음료’이게 하는 성분이 티폴리페놀, 곧 카테킨이다.
(66쪽)
이덕리는 당시 사원의 증배법 제다를 일반 대중에게 가르쳐 다산이나 초의보다 먼저 산차 제다로써 국부를 창출할 규모의 차생산 체제 수립안을 마련하였다. 이후에 다산이 1830년 강진 제자 이시헌에게 보낸 편지에서 ‘차떡’ 제다와 관련하여 ‘삼증삼쇄(三蒸三曬)’를 지시한 것도 이덕리가 소개한 이 ‘증배법’과 같은 제다법적 맥락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91쪽)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바람직한 한국 차 제다와 다도(수양다도)의 방향은, ‘심신건강 수양음료’로서 차의 ‘신묘한’ 다신을 잘 발휘하는 성분을 지닌 녹차를, 어떻게 그 성분이 잘 보전되도록 만들며, 그렇게 제다된 차를 여하히 중정(中正)하게 차탕을 우려내서, 음다명상을 통해 그 ‘신묘’를 행기(行氣)의 마음작용으로써 얼마만큼 잘 이해하고(解悟) 터득하는(證悟) 방향으로 다도를 수행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신묘(神妙)’는 한국 차 제다와 다도의 핵심 원리이자 그런 한국 차와 한국 수양다도만이 지닌 월등한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148쪽)
다도는 찻잎을 따는 일에서부터 차를 만들고 좋은 물을 골라 차를 잘 우려내서 차를 마시는 명상을 통해 자연합일 또는 득도에 이르는 전 과정의 수양론적 공부를 일컫는다(『동다송』에서 초의의 ‘다도’ 규정).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 충분한 여건을 갖추지 못한 일반인들을 위해서는 ‘찻잎 따는 일’과 ‘차 만드는 일’을 생략하고 좋은 차와 찻물을 선별하여, 차를 중정(中正)하게 우려내고, 그 차를 마셔서 신(神)의 경지에 이르는(獨啜曰神) 일련의 일과 명상의 과정을 다도라고 할 수 있다.
(2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