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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관통기

    • 저자
      이해승
      페이지
      352P
      판형
      정가
      14,800원
    • 출간일
      2017-12-01
      ISBN
      979-11-5776-506-5
      분류
      여행/예술/종교
      출판사
      책과 나무
    • 판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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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치밀하다거나 특별한 계획 없이 혼자 떠난 일본 여행기.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기차를 타고 규슈 최남단 마지막 마쿠라자키역까지, 그리고 바다 건너 오키나와로 가 나머지 14개 역을 순례했다. 찬찬한 마음으로 일본 구석구석을 기차로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의 편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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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치밀하다거나 특별한 계획 없이 혼자 떠난 일본 여행기.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기차를 타고 규슈 최남단 마지막 마쿠라자키역까지, 그리고 바다 건너 오키나와로 가 나머지 14개 역을 순례했다. 찬찬한 마음으로 일본 구석구석을 기차로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의 편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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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에비, 무쿠리 고쿠리
01 홋카이도(北海道, Hokkaido)
삿포로(札幌, Sapporo) - 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
비에이(美瑛, Biei), 후라노(富良野, Furano) - 그래, 지금 여기
오타루(小樽, Otaru) - 나르시시즘에 빠지다
하코다테(函館, Hakodate) - 백 년 동안 나의 방문을 기다린
02 혼슈(本州, Honshu)
모리오카(盛岡, Morioka) - 냉면, 은하철도 999
다자와코(田沢湖, Tazawako) - 삼나무 숲과 호숫가에 붉은 도리이
아키타(秋田, Akita) - 맹랑한 집주인 다이치
센다이(仙台, Sendai) -“마츠시마야, 마츠시마야, 아! 마츠시마야”
도쿄(東京, Tokyo) - 일본의 두 얼굴
나고야(名古屋, Nagoya) - “감춰진 것이 꽃이다.”
교토(京都, Kyoto) - 시인 윤동주, 정지용
시라하마(白濱, Shirahama) - 와이키키, 하얗게 부서지는 백사(白沙)
오사카(大阪, Osaka) - ‘머리부터 꼬리까지 팥’
돗토리(鳥取, Tottori) - 금계국이 노랗게 한들거리는 사막
오카야마(岡山, Okayama) - 일본 3대 정원 고라쿠엔
히로시마(廣島, Hiroshima) - 버락 오바마가 왔다
03 규슈(九州, Kyushu)
고쿠라(小倉, Kokura) - 구름이 살린 천운의 도시
가고시마(鹿兒島, Kagoshima) - 시작과 끝, 마쿠라자키 가는 길
사쿠라지마(櫻島, Sakurajima) - 화산과 바위의 고향
후쿠오카(福岡, Fukuoka) - 나카스 강변의 포장마차촌 야타이
04 오키나와(沖繩, Okinawa)
나하(那霸, Naha) - 물결치는 슈리성, 호감도 급상승
츠켄섬(津堅島, Tsuken Island) - 섬이 모르는 초겨울 냄새를 맡다
오키나와(沖繩, Okinawa) - 베이스! 베이스!
자마미섬(座間味島, Zamami Island) - 고양이를 살찌우는 초록 도마뱀
추라우미 수족관(沖縄美, Churaumi Aquarium) - 고래 그림자에 추억을 묻다
에필로그
일본에게 “너, 나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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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개

 

자전거 기어를 높여 긴 오르막을 쉬지 않고 오른다. 허벅지에 젖산이 고이고 머리가 어질하다. 바람결에 여주인의 무리요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다이세츠를 향해 한 시간 넘게 달렸지만 산은 어쩐지 가까워지기는커녕 더 멀어진 느낌이다. 더 갈 수 없어 이름 모를 언덕에 멈춘다. 길은 들판에 둥글게 금을 그으며 산을 향해 계속 이어졌다. 자전거에서 내려 오로지 혼자뿐인 것 같은 거대하게 텅 빈 공간에서 크게 심호흡한다. 다이세츠의 전령인 시원한 바람이 머릿결을 쓸어 넘기며 반겨 주었다.

바람과 심장 박동 외에 온통 적막뿐인 비에이 들에서 가슴 뭉클한 자유를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을 자유, 이 시간에 일상에서 이만큼 뚝 떨어져 있다는 자유, 새롭게 디딘 곳에서 새로운 곳을 보고 있다는 자유. 온갖 자유가 사방으로 부는 바람처럼 뒤엉키며 속이 후련해진다.

바람이 들이차고 눈이 매워 들판이 잠시 흐릿해질 즈음, 나는 돌아서 다시 긴 내리막을 꿈꾸듯 달렸다. 자전거 바큇살을 감아 도는 시계태엽 소리가 오로지 나를 위해 흐르는 비에이의 시간을 증거하는 기분이 들었다. 시로가네 온천과 근처 비에이 파란 연못을 스친 바람이 내 등에 바짝 붙어 이렇게 속삭인다.

 

그래, 지금, 여기.’

 

 

-<비에이 후라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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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여기 평범한 월급쟁이가 있다. 어느 해 창사기념일에 20년 근속패도 받았다. 자식 건사해 준 패가 고마워 마냥 눈시울이 뜨거운데, 무거운 유리덩이를 가슴에 품자 난데없이 귓불이 빨개졌다. 달리 돈 버는 재주 없이 20년이나 회사 그늘에서 나날이 무능해져 왔구나. 속을 들켜 민망한 그는 정색을 위해 스물일곱 첫 출근하던 파릇한 날을 떠올렸다. 훈장처럼 세월 곳곳에 붙여 둔 조악한 ‘레테르(letter)’ 목록도 급히 훑어 내렸다. 흘러간 시간이 꼭 나쁘지만 않았다고, 근거를 대고 싶은데, 근속패 안에 박제된 청춘은 잘 기억나지 않는 어젯밤 개꿈 같이 희미하기만 했다. 색 바랜 사진처럼 티미한 시간들을 ‘긍휼(矜恤)’히 여겨 그날 저녁 근속패를 쓰다듬으며 그는 소주를 한 병 마셨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나간 20년이 이랬다면, 다가올 20년도 그럴 것인가.
그는 조금 분명하게 자기 시간을 기록할 필요를 느꼈다. 평범한 일상을 일기에 적듯 한 줄씩 써 나가는 버릇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일생 프로젝트 하나를 기획하는데, 다름 아닌 ‘일 년에 한 나라 일주, 여행기 한 권’이었다. 가족을 끌고 브라질부터 쿠바까지 중남미 7개 나라를 여행한 뒤 2016년 『까칠한 저널리스트의 삐딱한 남미여행』을 첫 출간했다. 이 책 『진짜 일본이 궁금해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기차여행, 일본관통기』는 그의 두 번째 프로젝트다. 2016년 ~ 2017년 사이 세 차례 일본에 간 그는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기차를 타고, 규슈 최남단 마지막 마쿠라자키역까지 혼자 여행했다. 그리고 바다 건너 오키나와로 가 나머지 14개 역도 순례했다. 그 와중에 치밀하다거나 특별하다거나 한 계획은 전혀 없었다.
마쿠라자키 골목에는 채송화가 바람에 흔들리고, 고양이 여섯 마리가 낮잠 자며 개 대신 집을 지켰다. 마쿠라자키 골목은 다이요 마쿠라자키점 외에 대부분 활력을 잃은 듯하다. 나와 함께 도착한 노부부를 위해 시간은 정말 거꾸로 흐른 것일까. 양장점, 시계점, 가구점, 코카콜라 상표가 붙은 소매점은 모두 70년대 모습에서 멈춰 그대로 낡아 버렸다. 두 시간쯤 마쿠라자키를 휘-돌아 걷는 동안 역 근처에 등대를 발견했다. 등대 한쪽에 ‘최남단 종착역 마쿠라자키’라고 적혀 있다. 등대를 한 바퀴 돌자 반대편에 ‘최남단 시발역 마쿠라자키’라고 적혀 있다. 마쿠라자키는 종착역이면서 시발역이다. 그렇지. 끝은 또 다른 시작이고, 실은 뻔한 저 한 줄을 읽으러 나는 사람들이 오지 않는 마쿠라자키에 도착했으니까. 늦은 오후 열차가 출발할 때까지 마쿠라자키의 골목을 걸으며 나는 나를 짓누르던 것들을 몇 개 꺼내 여기저기 내려놓는다. 끝과 시작을 한 몸에 지닌 마쿠라자키가 모두 품어 주길 위안하면서. -마쿠라자키 역에서
그랬다. 책 껍데기에는 일본이 궁금했다고 너스레떨었지만 사실 그는 자기 인생이 궁금했을 뿐이다. 낯선 곳에 자기를 던져 놓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기분을 건져 올리는지, 또 어떻게 끼적대며 기록하는지 지켜보고 싶어 했다. 나중에 30년 근속패를 받거나, 그 전에 퇴직을 하거나, 또 다른 갈림길에 섰을 때 그는 조금 늠름하게 자기 인생을 말하고, 조금 당당하게 새 길에 서고 싶어 했다.
북이 울리자 우스꽝스러울 만큼 기괴한 표정으로 고함을 지른다. 도쿄대 극우 학생단체가 정기적으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벌이는 일상 의식인가 보다. 선언하고, 복창하고, 세뇌하고, 명령만 떨어지면 반자이(突擊 돌격)를 외치며 카미카제(神風)가 되어 날아오를 기세다. 둘러선 학생들도 가만 보니 구경꾼이 아니라 동참자다. 대부분 부동자세다. 목표를 향해 직진하는 좀비떼 같다. 나는 놀라운 속도로 소름이 돋아 도망치듯 광장을 빠져나왔다. ‘도망치듯 빠져 나온다’는 사전적 의미를 정확히 체험한 순간이다. 우에노 공원 한쪽에는 평화를 염원하는 영원한 불꽃이 타오르고, 바로 옆 도쿄대 야스다 강당에는 침략과 정복, 약탈을 향한 뜨거운 불꽃이 동시에 타오르고 있다. 이것이 일본의 두 얼굴이다. - 도쿄 4.
일본관통기가 그렇다고 순전히 자기 기분에 넋 나간 여행일기만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을 대하면 으레 만나는 역사적 앙금들을 가능한 편파적으로 기술해 나갔다. 그래서 책 제목이 일본 일주기가 아니라 ‘관통(貫通)기’다.
동양에서 가장 먼저 서구문물을 수용해 개화하고, 서구 제국주의를 본 떠 우리나라를 첫 제물 삼아 대동아공영을 꿈꿨던 일본. 하지만 역사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자신의 뿌리가 우리 한반도와 연결돼 있다는 진실을 외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신으로 섬기는 덴노 가문이 그렇고, 일본서기를 비롯한 고대 기록을 들추면 거의 모든 것이 한반도와 줄이 닿아 있다. 그래서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36년이나 식민지 삼았던 나라가 하필 우리의 큰형님 뻘이라니! 그래서 한편 끊임없이 역사를 왜곡해 수치를 벗어나고 싶어 하고, 또 한편 역사적으로 오래 축적된 열등감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시작은 개인 여행기였는데 결론은 자못 거창해졌다. 그는 여기저기 주워들은 역사의 조각들을 제멋대로 짜깁기해 일본은 원래 우리의 동생이었고, 지금도 마음으로는 우리를 좋아하고, 역사가 보여 주듯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언젠가 제자리로 돌아와 좋은 이웃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일본에 관한한 대한민국 국민은 저마다 전문가 수준의 뚜렷한 주의, 주장을 가지고 있겠지? 이 책은 그중 한 명이 찬찬한 마음으로 일본 구석구석을 기차로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의 편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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