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파괴하는 것만이 복수일까?”
“딱 일주일만 애경이하고 살고 싶었는데, 낌새를 챘는지 벌써 어디로 튀었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강변에 살자. 애경이 이 노래를 부를 때 이미 내 운명은 정해졌어. 햇볕에 달구어진 모래톱은 숭어뜀이라도 할 것처럼 반짝거리고, 나는 그 금모래 밭에서 애경이 허벅지를 베고 누워 영영 잠들고 싶었는데. 하, 나는 여기 이렇게 있는데 아무도 나를 못 봐. 아니, 나조차 내가 누구인지 몰라, 모른다고.”
눈에 보이는 바다는 경계석을 세울 수 없었지만, 이곳 사람들은 정해진 기간 동안만 북방한계선 근처 저도어장에서 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누구도 더 이상 북쪽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해안경비정이 경계선을 지키고 있는 사이에도 이따금 그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어 버리는 어선들 때문에 바다에는 풍랑이 일었다. 넘을 수 없다고 강제하는 어로한계선을 넘는 배들이었다.
정선은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으로 칼칼한 목을 축였다.
“아무리 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있다고.”
“그럴까?”
“그렇지.”
“아니. 봄꿈이고, 헛된 희망일지라도 계속 가 봐야겠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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