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수염할아버지가 본국으로 떠나는 날, 나는 호로 내려갔다. 워낙에 살림살이가 많지 않았지만 다 정리해서 썰렁했다. 나는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할지 몰라 쑥스러워 몸을 배배 꼬고 있었는데 콧수염할아버지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영미, 그동안 고마웠어. 이건 내 선물이야. 우리 딸 것인데, 영미한테 행운을 가져다줄 거야.”
상자에는 작은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콧수염할아버지의 딸이라면 폭격을 맞아 하늘나라로 갔다는 그 딸일 것이다. 목걸이에는 손톱만 한 코끼리 조각상이 달려 있었다. 나는 선물이라는 것을 받아 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엄마가 언니 오빠 생일은 미역국도 끓여 주고 챙겨 주면서 내 생일은 아빠보다 일주일 빠르다고, 아빠보다 빠른 딸 생일을 세면 아빠 생명이 단축된다는 이상한 미신을 받들어 이제까지 내 생일을 세 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하려는데 너무 고마워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목걸이에 달린 코끼리 조각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코끼리가 너무 귀여워요.”
“할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아빠한테 아주 어렸을 때 들었던 코끼리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 영미한테 들려줄까?”
“네.”
호기심 많은 아기코끼리가 여행을 떠났지. 한참 여행을 가다가 비단 장사를 만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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