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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영혼의 가르침

    • 저자
      양수환
      페이지
      362p
      판형
      152 * 225 mm
      정가
      18,000원
    • 출간일
      2014-02-01
      ISBN
      979-11-8560-904-1
      분류
      인문/사회/과학
      출판사
      책과 나무
    • 판매처
      • 교보문고
책 소개

『아름다운 영혼의 가르침』은 현대 인도에 영혼의 등불을 밝힌 정신적 스승이라 불리는 스와미 비베카난다《The complte works of Swami Vivekananda》의 ‘라자 요가’와 ‘카르마 요가’ 부분을 번역한 것이다. 요가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탄잘리’의 ‘요가경’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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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옮긴이 서문_04

1부 라자 요가

서문_10
1장 들어가며_14
2장 처음 단계들_29
3장 프라나()_42
4장 정신적 프라나_59
5장 정신적 프라나의 제어_67
6장 프라티야하라()와 다라나()_74
7장 다야나()와 삼마디()_84
8장 라자 요가 요약_97

2부 파탄잘리의 요가경

입문_108
1장 집중: 그 정신적 용도_115
2장 집중: 그 연습_158
3장 능력_200
4장 독립_219

3부 카르마 요가

1장 카르마가 성격에 미치는 영향_240
2장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위대하다_251
3장 행위의 비밀_271
4장 임무란 무엇인가?_285
5장 우리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돕는 것이다_298
6장 비집착은 완전한 자아부정이다_311
7장 자유_329
8장 카르마 요가의 이상_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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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개
마음의 일부는 곁에 서서 여러분이 뭘 생각하는지 본다.
마음의 힘은 집중되어 그 자체로 회향해야 한다. 침투하는 태양 빛 앞에서 가장 어두운 장소도 그 비밀을 드러내듯, 이렇게 집중된 마음은 그 자체의 가장 깊숙한 비밀을 꿰뚫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믿음의 근거로, 진정한 종교로 다가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영혼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 인생이 한 순간인지 영원한지, 우주에 신이 하나만 존재하는지 더 있는지 등을 스스로 알아차릴 것이다. 그 모두가 우리에게 드러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라자 요가가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의 모든 가르침의 목표는 어찌 마음을 집중할 것인가, 어찌 우리 자신의 마음의 가장 깊숙한 구석진 곳을 밝혀내고, 어찌 그것들을 일반화하여 그로부터 우리 자신의 결론을 도출할 것인가에 있다.
그러므로 라자 요가는 우리의 종교가 뭔지, 우리가 유신론자인지 무신론자인지, 크리스찬, 유대교도 또는 불교도인지 묻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모든 인간에게는 종교를 추구할 권리와 힘이 있다. 모든 인간은 이유를 묻고 스스로 그의 질문에 답할 권리를 지닌다. 그럴 수고를 감당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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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비베카난다(Swami Vivekananda)가 누구인지 소개하는 데 앞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보자.

“나는 비베카난다의 작품들을 통독했다. 다 읽고 난 후, 나는 내 나라를 천 배나 더 사랑하게 되었다.”
- 마하트마 간디

“비베카난다가 지은 책을 내게 보내달라. 그것은 기쁨 이상이며, 영혼을 확장시킨다.”
- 레오 톨스토이

“만일 인도를 알고자 한다면, 비베카난다를 공부하라.”
- 라빈드라나쓰 타고르

“어디에서 그 같은 사람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가 쓴 것을 공부하고, 그의 가르침으로부터 배워라. 그러면 막대한 정신력을 얻을 것이다.”
- 인도 초대 총리 네루

비베카난다는 그의 짧은 인생(1863~1902) 에도 불구하고 현대 인도에 영혼의 등불을 재차 밝힌 정신적 스승으로, 고결한 인도 정신의 요람인 베단타를 서구 사회에 정열적으로 소개했으며,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으로서의 요가를 대표하는 것으로 라자(Raja), 카르마(Karma), 즈나나(Jnana), 박티(Bhakti)의 네 가지를 각각 특유의 설법으로 설파했다. 그는 깨달음이나 계시 같은 현상이 일부 선지자나 선택된 종교적 리더들에게만 일어나며 다른 사람들은 그저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완전히 부정하고, 같은 조건에서 화학 실험을 한다면 누구라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듯, 정신적 수련도 이미 밝혀진 방법에 의해 수련한다면 누구라도 그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명확히 말했다.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이미 밝혀진 방법이 바로 ‘요가’이고, 비베카난다는 이를 ‘요가 과학’이라고 했다.
다음은 ‘카르마-요가’와 ‘라자-요가’ 부분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개개의 영혼은 잠재적으로 신성하다. 목표는 내적 및 외적인 본성을 통제함으로써 이 내적인 신성을 발현하는 것이다. 이것을 행위 또는 예배나 심리적 제어, 또는 철학, 이 중 한 가지나 여러 가지, 혹은 이 모두에 의해 자유롭게 되라. 이것이 종교의 전부다. 교리, 신조, 종교의식, 책, 신전, 또는 형식들은 모두 부차적인 세부에 불과하다.”

“상이한 인종은 서로 다른 자연 통제 과정을 밟는다. 같은 사회 안에서도 어떤 이들은 외부 자연을 제어하길 원하고, 다른 이들은 내부를 통제하길 원하듯, 인종 간에도, 어떤 인종들은 외부 자연을, 다른 인종들은 내부를 통제하길 원한다. 어떤 이는 내적 본성을 제어함으로써 모든 것을 제어한다고 말하고, 다른 이들은 외적 자연을 제어함으로써 모든 것을 제어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둘 다 옳은 말이다. 자연에는 내적이니 외적이니 하는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실존하지 않는 허구의 제약이다. 현상론자와 내재론자는 모두 그들 지식의 극한에 도달할 때 한곳에서 만나게 돼 있다. 물리학자가 그의 지식을 한계까지 밀어버릴 때, 그것이 형이상학으로 녹아드는 것을 알게 되듯, 형이상학자는 그가 마음과 물질이라 부르는 것이 외관상의 구별일 뿐이요, 실제로는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크리스찬은 사람들에게 그의 종교를 믿으라 하고, 예수를 믿고 그가 신의 화신임을 믿으며, 신과 영혼, 그 영혼의 더 나은 상태를 믿으라 한다. 내가 만약 그 이유를 물으면, 그는 ‘그것들을 믿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신이 크리스트교의 근원을 들여다본다면, 그것이 경험에 기반한 것이란 걸 발견할 것이다. 예수는 신을 보았다고 말했고, 그의 제자들은 신을 느꼈다고 했다. 유사하게, 불교에서도 그것은 부처님의 경험이다. 그는 어떤 진리를 경험했고, 보았고, 접했으며, 그것들을 설법했다. 힌두교도 마찬가지다. 리쉬스(Rishis) 또는 성자라 불리는 작가들은 그들의 책에서 선언하기를, 그들은 자신이 경험한 진리를 설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모든 우리의 지식의 보편적이고 확고한 기반, 즉 직접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스승들은 모두 신을 보았고, 그들 모두 그들의 영혼을 보았고, 그들의 미래를 보았고, 그들의 영원함을 보았으며, 그들이 본 것을 설법한 것이다. 단지 다른 점이 있는 것은, 특히 현대에서 대부분의 이들 종교들에 의해 기이한 주장이 제기된다. 소위, 이런 경험들은 오늘날에는 불가능하며, 그것들은 단지 종교를 창시한 소수의 사람에게만 가능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런 경험들이 쓸모 없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종교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을 나는 완전히 부인한다. 이 세상에서 어떤 특정 지식 분야에서 있었던 경험이 있었다면, 그 경험이 예전에도 수백만 번 가능했으며, 영원히 반복될 것이란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한결같음은 자연의 엄격한 법칙이다. 한 번 일어난 것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요가 과학을 가르치는 스승들은 종교란 것은 옛날의 경험에 기반할 뿐만 아니라, 누구도 그 자신이 똑같은 인식을 갖기 전에는 종교인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요가는 이런 인식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과학이다.”

“우리는 프라나야마가 심지어 심령술에 해당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고 이해한다. 유사하게, 어떠한 종파나 사람 집단이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또는 숨겨진 뭔가를 찾으려 할 때마다,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은 이 요가이자, 프라나를 제어하려는 시도라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여러분은 어디서든 무언가 특이한 힘이 표현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이 프라나의 발현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자연과학 조차도 프라나야마 안에 포함될 수 있다. 무엇이 증기기관을 움직이는가? 증기를 통하여 활동하는 프라나다. 전기와 기타 등등의 현상들이 프라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연과학이 무엇인가? 외적 의미로는, 프라나야마의 과학이다. 정신적인 힘으로 자신을 발현시키는 프라나는 오로지 정신적인 방법으로만 제어될 수 있다.
프라나야마의 물리적 방법으로 프라나의 물리적 발현을 제어하려는 시도를 ‘자연과학’이라 하고, 정신적 방법으로 정신적 힘으로서의 프라나의 발현을 제어하려는 부분을 ‘라자 요가’라고 하는 것이다.”

“깨달음은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깨달음도 밖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모두 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안다’라고 말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그가 ‘발견한다’ 또는 ‘밝히다’라고 해야 한다. 사람이 “배운다”는 것은, 실제로는 무한한 지식의 보고인 그 자신의 영혼을 가리고 있는 것을 걷어 버리는 것이다.”

“행위 하는 것은 우리의 권한이지만, 그로 인한 열매는 그렇지 않다.”
열매는 그대로 두라. 왜 결과에 연연해 하는가? 만일 그대가 어떤 사람을 돕고자 한다면, 절대로 그대를 향한 그 사람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는 생각하지 말라. 그대가 훌륭한 선행을 하고자 원한다면, 그 결과가 무엇이 될까를 가지고 고민하지 말라. 그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끊임 없이 행위 하되, 행위에 대한 모든 집착을 버려라.”
그대 자신을 어느 것으로도 식별하지 말라. 그대의 마음을 자유롭게 하라. 그대가 보는 이 모든 고통과 불행은 이 세상의 필요조건일 뿐이고, 가난과 부유함과 행복은 순간의 것으로, 그것들은 전혀 우리의 진정한 본성에 속하지 않는다. 우리의 본성은 고통과 행복을 훨씬 넘어서고, 어떠한 감각대상도 넘어서며, 상상도 넘어서지만, 우리는 언제고 행위를 계속해야 한다.
“고통은 집착을 통해 오는 것이지, 행위를 통해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우리가 하는 행위와 동일시하는 순간, 우리는 고통을 느끼지만, 우리자신을 그것과 동일시하지 않으면, 우리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다른 사람 소유의 예쁜 그림이 타버린다 해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지만, 만일 자신의 그림이 타버린다면, 얼마나 비참하게 느낄 것인가! 왜? 둘 다 아름다운 그림으로, 아마도 똑같은 원본의 복사본 일지도 모르지만, 후자의 경우에 전자보다 훨씬 더 고통이 느껴질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그 자신을 그림과 동일시했지만, 전자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나 와 내 것’ 이란 것이 모든 고통을 일으킨 것이다. 소유감각과 더불어 이기심이 생기고, 이기심이 고통을 부르는 것이다.
붓다는 “어떤 기도문들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믿지는 말라, 그것이 그대의 국교라서, 그대가 어릴 적부터 그것을 믿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믿지는 말라. 심사숙고하고, 그대가 그것을 분석한 후에, 그것이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되면, 그것을 믿고, 그것에 따라 생활하고, 남들도 그것에 따라 생활하도록 도우라.”고 감히 얘기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어떠한 동기도 없이, 돈을 위해서도 아니고, 명성을 위해서도 아니고, 다른 어떠한 것을 위해서도 아닌 채 행위 하는 사람이 가장 잘 행위 하는 사람이다. 누군가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그는 붓다가 될 것이며, 그로부터 세상을 변화시킬 그런 방식으로 행위 할 힘이 나올 것이다. 이 사람이 바로 ‘카르마-요가’의 가장 숭고한 이상의 표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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