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신화와 전설을 우선적으로 배제시켜야 된다고 몸젠은 말했지만, 작정하고 거짓을 지어낸 것이 아니라면 전설조차도 생겨난 근거가 있는 것이니, 로마인의 희망과 경건함이 서려 있는 건국 신화까지도 어쩌면 역사의 일부분이 아니겠는가?
(45쪽)
타르페이아는 적에게 성문을 열어 주는 대가로 재물을 요구했고, 기생 라합은 적을 숨겨 주는 대가로 목숨을 구했으며, 기생 논개는 적을 죽이는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맑은 정신을 소유한 자라면, 이 셋 중 역사에 가장 명예롭게 남아야 할 여인의 이름이 누구인지를 판단하기는 아주 쉬운 일이다.
(54쪽)
권력에의 유혹과 욕망이 브루투스의 두 아들을 흔들었다. 자신이 만든 제도에 시험당하게 된 브루투스는 강직한 기질과 분노가 뒤섞인 채로 소름 끼치는 형벌을 법의 지시대로 집행했다. 아들들에게 참혹한 형벌을 집행한 이유가 인간적 감정을 떨치고 정의를 위해 옳은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정신적 고통에도 무감각해질 정도로 정신적 불구자였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눈물조차 말라 있었고, 우둔하다는 의미를 가진 ‘브루투스’란 말만큼 그의 삶을 설명하는 단어는 없었다.
(131쪽)
“무릇 있는 자는 더 받겠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긴다.(註. 누가복음 19장 26절)”는 밉살스런 진리가 입증되듯,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다르고 재주를 부리는 자와 재물을 얻는 자가 서로 같지 아니했다. 게다가 많은 것을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까닭에 아무리 많이 가진 자라도 만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침내 로마의 지배층은 평민들의 분노를 납득하고 그들을 달랬으며, 타협안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152쪽)
모함은 두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고 한 사람은 피해자로 만드는 무서운 범죄다. 모함하는 자가 범죄자가 되는 것은 그 자리에 없는 자를 고발하기 때문이며, 그의 말을 믿는 자가 범죄자가 되는 것은 사실 관계를 알아보기 전에 판단하기 때문이다.(아르타바노스)
(1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