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호 베란다에서 까치가 담배를 피우는 겨울밤이다
301호 고무나무가 쿨럭쿨럭 기침을 하는 겨울밤이다
(중략)
801호 쌍둥이들이 장난감 총을 겨누며 쿵쾅 뛰는 겨울밤이다
901호 노인이 막 숨을 거두는 거실에 디지털시계 알람이 길게 울리는 겨울밤이다
1001호 젊은 곰이 이중창의 양쪽 고리를 잠그고 오디오를 켜는 겨울밤이다
1101호 여우가 전자기타를 목에 걸고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는 겨울밤이다
(중략)
1801호 돼지가 유튜브 먹방을 보며 손가락을 쭉쭉 빠는 겨울밤이다
1901호 인공지능 로봇이 청소를 하다가 발랑 뒤집어져 배를 잡고 깔깔거리는 겨울밤이다
2001호 창에 붙박여 있던 달이 창백한 몸을 열고 울 것 같은 얼굴로 돌아가는 겨울,
101호 반지하 방에서 두 시가 찢어지는 겨울밤이다
_김순아, 「겨울밤 아파트」
내 숨죽여 걸어온 시간들이
깊은 그대 눈 속
천 갈래 흔적으로 맺혀 있어
지금은 나의 길을 버리고
그대의 길로 가만히 스며드는 때
사랑은 사람이 내는 일이 아니라
하늘이 내는 일이라고
바람은 짐짓 내색이 없어도
삼라만상을 기운 돌게 하고
햇살은 그 뜨거움 없이도
모든 것의 심장을 데워 주느니
겨울 숲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굳은 흙을 들썩이며 돋아나는
고맙고도 눈물겨운 예감
_이지연, 「어떤 예감」
차가운 가지의 표면을 뚫고
뜨거운 피의 흐름을 살펴봐
곡선의 운율로 삭막한 허공을
수식하는 일에 동참한 나무의 결의
긴 겨울의 삭막함이 진부했을 뿐
그 어떤 기행의 발로는 아니었다
누구에게도 정의 되고 싶지 않은
나무의 일탈쯤으로 생각하면 그만이다
때론 입양한 눈꽃을 키우면서도
그 피돌기 멈추지 않는 것은
긴 면벽의 시간
견디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_주미화, 「나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