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성주성이 함락될 때 이덕열의 부인은 방에서 아기를 안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때 왜적 두 명이 방 쪽으로 마구 들이닥치고 있었다. 그때 마침 호위하여서 데리고 갈 군졸과 싸움이 벌여졌다. 다행히도 그 군졸이 잽싸게 두 명을 칼로 쓰러뜨렸다.
“마님! 빨리 여기를 피해야 합니다. 왜군들이 몰려옵니다. 성주님께서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부인은 첫아들을 데리고서 일꾼 머드리와 여종을 따르게 하여 물건을 대강 챙겨서 나갔다. 왜적이 몰려오는 곳을 피하여 간신히 후미 쪽으로 나왔는데, 그때 그녀의 오라버니와 동생이 들어오면서 마주치며 놀라고 크게 걱정하였다.
일행은 서둘러서 산 쪽으로 들어갔다. (18쪽)
덕열이 문상에서 돌아올 때 의인왕후는 부인에게 가져다주라며 조그마한 옥구슬을 고마움의 답례품으로 건네주었다. 그래서 덕열은 언젠가 처남인 ‘김정보’가 왜적에 잡혔을 때 옥구슬로 간신히 살아나고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한양 집으로 돌아오니 부인이 덕열의 모습을 보고 반겼다.
“그동안에 힘들지 않으셨습니까? 많이 피곤해 보이십니다.”
“난 하나도 힘들지 않았소. 이것은 부인에게 줄 선물이오. 왕비마마께 주셨습니다.”
덕열은 옥구슬을 부인에게 건네며 말했다.
“부인에게 미안하오! 그동안 어떤 선물도 증표도 주지 못하였으니 내 마음이 참 안되었소. 이제야 이야기를 전하오. 처남 정보가 누님에게 주려고 고이 간직했다가 왜적에게 뺏긴 옥구슬이야기를 해 주었구려. 정보가 많이 아쉬워하였으니 처남 대신에 이 구슬을 부인이 받아 주시오.”
구슬을 받아 보고 부인은 마음이 기뻤다.
“지금 같은 환란 속에 먹지 못해서 굶주림에 사는 세상에서 옥구슬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떤 자가 한번은 옥구슬을 주고 식량으로 바꾸려고 했는데 거절당하고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식량을 구하려는 난리판에서 염치가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생각해 주시니 잘 간직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부인은 고마워하는 눈웃음을 보여 주었다. (80-81쪽)
2016년 10월 17일, 전남 곡성군에서 379년 전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미라가 발견됐다. 미라는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며 인조 때인 1637년 남원 주포방(현 주생면 영천리)에서 71세에 별세한 청풍김씨(淸風金氏)로 확인되었다. 청풍김씨는 이덕열(호 양호당)의 정부인이며, 파묘 현장에서 구슬과 편지들이 발견되었다.
미라는 물과 공기를 차단하기 위하여 소나무 관에 옻칠을 하고, 그 위에 석회석을 덮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주고받은 편지는 소박한 향토적 언어 표현으로 온정이 담겨 있으며, 자료는 기록사진으로 하여 남원석주미술관에서 관리하고, 남원시 주생면 영천리에 다시 매장하였다. (2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