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작품 <<혁명론>>은 런던에서 1797년에 만들어졌고, 마지막 작품 <<랑세의 생애>>는 1844년 파리에서 만들어졌다. 두 날짜의 사이에는 47여년의 세월이 있으며, 타키투스가 <인간 생애의 긴 부분인 15년 >이라고 불렀던 것의 3배나 되는 기간인 것이다. 세월은 흘러갔고, 나는 루이 16세와 보나파르트가 죽는 것을 보았으니 그 후에 더 살아가는 것은 하찮은 일이다. 이 세상에 남아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눈가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씻어낼 만큼의 긴 머리터럭도 없을 때에 이 세상에 머무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푸생의 마지막 작품인 <노아의 홍수> 그림에서 명료하지 않은 윤곽선에 주목하게 되는데, 부족했던 시간은 그 위대한 화가의 걸작품을 아름답게 해주었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나를 관대하게 보아주지 않으리라. 나는 푸생이 아니고, 나는 테베레 강가에서 살지 않고, 그리고 내게는 날씨마저도 궂은 것이다.>
< 봄날들에 대해 따져 물어보기에는 나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세월은 나에게서 일손들을 거두었으므로, 꽃이 떨어진 날들에는 거두어들일 것이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
<오늘날 아무도 모르게 된 그 모든 일에는 마음에 드는 침묵이 있고, 그 일들은 당신들을 과거 속으로 다시 데려간다. 당신들이 먼지 속으로 사라져가는 그 기억들을 뒤적일 때, 인간의 허무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아니라면 그것들로부터 무엇을 다시 끄집어낼 것인가 ? 그것들은 망령들이 해 뜨기 전에 묘지에서 회상하는 끝나버린 유희들인 것이다.>
< 수도원의 길 위에서 사람들은 세상의 도망자들과 마주쳤고, 랑세는 위험과 재난을 무릅쓰고 그들을 거두어들이러 갔으며, 불타고 남은 재를 옷자락에 담아 개간되지 않은 황무지에 뿌렸다. > < 그곳에서 추억들은 적막 속으로 가라앉고, 속죄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잘못을 함께 가지고 가는 것이다. 뉘우치는 사람들은 외딴 길에서 산책하고, 서로 마주치고 다시 만나지 않는다. 추억을 가진 영혼들은 내가 어린 시절에 브르타뉴 바닷가에서 바라본 아지랑이처럼 사라졌다. > < 그들은 대천사의 목소리가 잠에서 깨워주기를 기다리고, 그때에는 영원히 찬란하게 빛나는 백합꽃들처럼 다시 피어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