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60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그래도 인생을 나름 잘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저자 제이 리는 1995년 12월 5일,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다. 첫날부터 잠잘 곳을 찾아야 했고, 방세를 선불로 지급할 수조차 없었기에 간신히 얻은 방의 주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해야 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얻은 직장은 제과점이었다. 그게 가장 빠르게 얻을 수 있는 직장이었다.
저자는 한국에서 사업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남 부러울 게 없었다. 그러나 삶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사업에 정신없이 매달렸고 딸이 있었고, 아들까지 임신했을 때였다. 남편의 학대가 시작됐다. “이따금씩 이불에 실례를 하고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네거 주전자로 물을 쏟아 부었지?” 하고 억지소리까지 해대곤 했다. 어린 딸 세리는 그런 아빠를 보며 겁에 질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눈치를 보며 밤이면 요에 오줌을 쌌다.”
시어머니마저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사업인지 뭔지 그만 때려치우고 살림이나 조신하게 해라.” 하며 핀잔을 주었다. 결국 그녀는 이혼을 선택했다. 배 속에 아이는 유산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고 딸은 그녀가 맡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녀는 이혼을 했다. 그녀는 자식들을 모두 지키고 싶었다. “법원에 갔을 땐 이미 입덧이 멎은 상태라 감쪽같이 모두를 속일 수 있었다.” 하지만 배가 불러오면서 남편과 시어머니가 당장이라도 아이를 빼앗아갈 거라는 불안에 시달렸다.
그녀는 가만 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국을 떠나자고 맘을 먹었다.” 그녀는 환갑을 넘긴 친정엄마에게 갓 태어난 아들과 딸을 맡겼다. 미래의 꿈을 위해. 그녀만의 인생이 아닌, 그녀만의 삶이 아닌 어린 자식들의 미래를 위하여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으며 기나긴 삶의 여정에 올랐다.
제과점 점원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미국에서의 20년
저자는 월세방을 찾아 전전했고, 조금이라도 의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고향 사람에게 유괴범으로 오해를 받기까지 했다. 곰팡이가 있는 식빵에 상한 잼을 발라 아껴먹으면서도 꼭 성공해 친정엄마에게 맡긴 두 아이를 데리고 오겠다는 신념 하나로 버텼다.
친정엄마에게 두 아이를 맡겼을 때, 딸은 8살이었고 아들은 갓난아기였다. “꼭 데리러 올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악착같이 일에 매달렸다. 저자는 그 아이들을 10년 만에 공항에 맞이할 수 있었다. 그 힘든 시절을 겪었지만 그녀를 울게 한 것은 아이들었다. 아이를 단박에 알아보고 공항에서 엉엉 울음을 터트린 저자. 저자는 10년을 더 일에 매달렸고 이제 자신의 빌딩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스파와 웨딩숍을 운영하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참고서적을 찾아 서성이는 이들에게 제이 리의 『American Dream 무작정 Go 마이웨이』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