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익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박자와 형식에 집착하지 않고 그만의 가락을 만들었던 것처럼, 격이라는 것은 소박(素朴)함 속에서 절로 솟아 나오는 샘물 같은 것임을.
세월은 가고 또 오는 것이고 우리네 삶도 그러한 것. 빈손으로 두리번거리고 흔들리며 길을 지나왔던 것처럼, 그의 삶은 고단하기도 했지만 끝내 그 신명과 흥을 찾아 나섰고 그 신명과 흥을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은 설레었으나 강줄기처럼 구부러지고 비탈진 삶의 길을 유랑하듯 흘러가면서도 오랫동안 꿈꾸었던 길을 찾았으므로.
(51쪽, 「소리꾼 — 장사익」)
그가 정착한 곳에는 ‘예술곳간 몽유(夢遊)’라는 문패가 자랑스럽게 그려져 있다. 가끔 그를 만날 때마다 나는 ‘시인님’이라고 부른다. 나도 문장의 꿈을 꾸는 자이지만 나의 삶은 그처럼 온전히 시가 될 수 없다. 삶의 일부가 시일뿐이다. 알 듯 모를 듯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의 시속에는 시공간 속에서 생을 영위하는 존재들이 꽃으로 피어나듯 한다. 그러니 그의 시는 향기가 날 수밖에 없다. 그가 태를 묻은 경상도와 오랫동안 산의 일부로 전전했던 전라도의 사투리가 든 시가 그렇다.
그는 속세를 떠나듯 지리산을 숨어들었다가 구생(求生)을 이루었고 이제 구도(求道)를 얻으려 하는 듯, 도는 산에서만 구해지는 것이 아닌 듯했다.
(90쪽,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이원규」)
난로의 온기에 몸을 한기를 털어내었을 때도 짧은 겨울해가 기운지 한참 지났지만 그는 저녁은 먹었는지도 물어봐주지도 않았다. 낯선 영역을 기웃거리는 침입자처럼 불편한 마음이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졸아드는 느낌이었다.
“원래 그렇게 퉁명스러우세요? 그에게 다가가려는 몸짓이었을 것이다.
“내가 원래 그래요. 누구에게도 친근하게 대하지 못하는 게.” 이해가 오는 듯도 했지만 그이 말이 선뜻 다가서지는 않았다. 차를 한 잔 내주고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예술에 대한 그의 시각이었다. 그가 정말 십대 후반에 그런 삶의 지평을 펼치는 그런 언어를 구사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그 밤에 그가 한 말 중에 기억하는 몇 가지는 내 마음속에 옮겨졌다.
(221쪽, 「진도, 진도 사람들」)
시련의 계절을 지났지만 그에게는 신성한 숲의 나무들이 곁에 있었던 듯싶다. 일본인 기술자가 철수하면서 회사는 어려운 사정에 직면했고 그는 독학으로 일본어를 배워 읍소하듯 기술을 전수받았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가 이룬 성취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게 되었고 주말이면 어머니가 계셨던 마을로 돌아와 숲을 오르내리고 철따라 숲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전해주었다. 철따라 이어지는 그 이야기들은 숲을 기대고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어 더 진진했다.
(265쪽, 「성황림이 곁에—고주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