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만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선진(先進)문화 민족이자 하늘의 자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것을 되새기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잃어버린 뿌리와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의 근본이자 본래 역사를 찾으려면, 상고사(上古史)가 시작되는 바이칼과 북만주에서 출발해야 한다. (21쪽)
바이칼은 세계 최고 최대의 담수 호수이며, 알혼섬은 바이칼호 안에 있는 27개의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으로 예부터 불칸 바위는 바이칼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로, 이곳은 여자나 외부인들은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소도(蘇塗)’ 같은 장소이다. 소도란 ‘솟대’·‘솔대’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는데, 제의(祭儀)가 행해지는 신성한 지역으로서 삼한시대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지낸 성지를 지칭하는 곳이라고 전해진다. 오래전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배운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를 이곳에서 실제로 접해 보게 되다니, 정말로 견학을 온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50쪽~55쪽)
알혼섬 박물관에 걸려 있는 몽골리안 이동 경로 연구 도표는, 1975년 “미국·소련 공동 학술 연구단”이 알혼섬을 조사한 것으로, 바로 이 알혼섬에서 퍼져 나간 몽골리안의 이동 분포도를 그려 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 도표는 몽골리안들이 바이칼을 기점으로 퍼져나간 이동로를, 몽고·한국·일본·중국·태국·인도·호주·노르웨이·아일랜드·아틀란스·안데스·북아메리카 등으로, 직선으로 연결해서 표시해 놓았다. (64쪽)
울란우데에서 만난 가이드 뚝뵈마는 자신을 “코리족”이라고 소개하였다. 그녀의 선조들은 원래 바이칼 유역에서 살고 있었는데, 7대조 때 이곳 울란우데로 이주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여기에서 어렴풋이 우리 민족의 계보에 대한 가닥이 잡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사학에서 고구려 이전의 부족 이름이 “고리”라는 학설이 있는데, 이는 북부여나 고조선의 이름일 수도 있다고 한다. 고구려(高句麗)는 본래 ‘고구리(高句離)’라고 불렸었는데, 일제 식민지 시절 강제로 ‘고구려’라고 바꿨다고 한다. (89쪽)
‘신(新)만주리’ 기차역에서 오전 9시 15분발 치치하얼행 열차를 탔다. 지도를 펼쳐 보니 기차는 대흥안령산맥을 넘어가고 있었다. 고도계를 놓고 보니 1,000m 고지였는데, 전혀 높은 산을 넘어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 “우리 조상들이 대흥안령산맥을 넘어서 이동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막연히 무슨 큰 산맥이 가로막혀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와서 살펴보니까 완만한 기찻길이었다. 길게 뚫어 놓은 터널도 하나 없으며, 힘들여 올라가는 경사진 산길도 아니고, 그저 완만한 고갯길이다.
아마 조상들은 말 타고 목초지를 따라서 양 떼들을 몰고 어렵지 않게 넘어왔을 것 같다. (126쪽)
동명성왕(東明聖王) 고주몽이 나라를 세우고 도읍 자리를 살피다가 북계룡을 찾았다고 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과연 하늘이 내린 명당이었다. 하지만 곧 그곳이 이천 년 후의 신(新) 도읍 자리임을 알아보고, “다음에 올 임금의 자리이다.”라며 양보했다고 한다. 그리고 인근에 협소한 산골짜기에 도읍을 정했다고 한다. 그곳이 동명보자(東明堡子)이며, 지금의 계관산이라고 한다.......... 동명성왕을 통해 큰 교훈을 얻었다. 당대의 이익을 버리고, 후손과 뭇 백성들까지 배려하며,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을 실천해 온 위대한 선조의 정신문화적 실체와 역사를 직접 확인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계승하여 잇고 앞으로 전승해 나가야 할 민족의 진실한 역사이며, 밝은 미래로 뻗어 나갈 우리의 정신문화이고 자존과 자긍의 원동력인 것이다. (203~2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