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끝나자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좋은 연기를 보여 준 그들을 향해 기립박수와 함성으로 감사함을 표했다. 무대 위에서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인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기보다는 내가 직접 주인공이 되어 살아 보고 싶다고. 그렇게 해서 나는 부모님과 상의도 없이 내 독단으로 전과를 신청하였다. 다행히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당시 학과장이셨던 K교수님은 서류에 사인과 직인을 흔쾌히 찍어 주셨다.
“젊었을 때는 하고 싶은 것을 다 해 봐야지.”
그렇게 다음 학기에 나는 정식으로 연극영화과 학생이 되었다. (14p)
술자리가 마무리될 때쯤 그는 나에게 함께 일을 해 보자는 제의를 했다.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우리는 끼가 있어서 금방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몇 번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고 마지막엔 정중하게 거절하며 술값을 계산했다. 나에겐 제법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스스로 지키고자 했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값싼 대가였다. 그가 말한 성공한 사람들처럼 슈퍼카를 몰고 아름다운 여성들과 화려한 삶을 살기보다는 그저 무대에서 빛나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단지 그것만이 내 인생의 목표이고 전부였다. (28p)
“안타깝지만 우리 공연은 취소하기로 했다.”
우리는 귀를 의심했다. 연출은 담담한 표정으로 우리 작품에 대한 투자가 취소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연습하던 연출 소유의 극장은 다른 사람에게 대관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동안 해 오던 아르바이트도 중단한 채 연습비 한 푼 받지 못하고 열정을 쏟아부은 우리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66p)
저녁을 먹고 계산을 하기 위해 식당 입구로 갔다. 잘 먹었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점원에게 카드를 건넸다. 하지만 점원이 몇 번이나 카드를 긁어도 결제가 되지 않았다.
“고객님, 잔액 부족이라고 나오는데요?”
늦은 저녁 시간이었지만 아직 프러포즈 이벤트 페이가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보던 그녀가 자신의 카드를 내밀어 계산을 했다. 계산을 하고 뒤따라 나온 그녀가 잠시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자 그녀가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말했다.
“먹고살기 힘들지?”
그녀는 이것도 생일 선물이라는 말을 하며 대신에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풀이 죽어 있는 나를 달랬다. 생일날 여자 친구에게 밥 한 끼 사 주지 못하는 현실에 비참함을 느끼며 그녀의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202p)
사람들은 돈도 못 벌고 불안정한 삶을 사는 배우를 왜 하느냐고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연기란 돈키호테 데 라만차의 둘시네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냉혹한 현실은 풍차, 그리고 소중한 나의 친구들은 로시난테와 산초인 것처럼.
이 글을 읽으며 꿈을 좇고 있는 당신들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누가 뭐래도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니까요. 힘든 일이 닥치고 좌절을 겪어도 우리 돈키호테들은 지칠 줄 모르고 달려갑니다. 가슴속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단단한 철학을 품고.
‘오늘도 풍차를 향해 달려갑시다.’ (22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