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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혼의 오페라

    • 저자
      박상원
      페이지
      424 p
      판형
      152*200 mm
      정가
      18000원
    • 출간일
      2021-06-17
      ISBN
      979-11-6752-001-2
      분류
      여행/예술/종교
      출판사
      책과나무
    • 판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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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개

우리는 우리의 고향이 어디에 있는지 지도를 펼치고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다. 그곳은 우리가 눈을 감고도 돌아다닐 수 있는, 너무나도 익숙한 곳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가를 묻는다. 이런 질문은 고향에 살든 타향에 살든 똑같고, 나이가 들어 죽음이 가까울수록 더욱더 잦아지는데, 우리가 살면서 이야기하는 이곳은 바로 영혼의 고향이다. 이곳은 육신의 고향과 아주 다르다. 육신의 고향은 우리가 태어나 오는 곳이지만, 영혼의 고향은 우리가 죽어야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간혹 영혼의 고향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영혼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우리 육신의 고향을 노래한 작곡가가 드보르자크라면, 우리 영혼의 고향을 노래한 사람은 바흐(1685~1750)이다. (110~111쪽) 

 

 

만일 당신이 바다를 사랑하여 한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보다가 문득 신에 대한 명상에 잠긴 적이 있다면, 틀림없이 팔레스트리나(1525~1594)의 미사 『교황 마르첼리』를 좋아하게 될 거다. 왜냐하면 이 곡 안에 거룩한 파도가 넘실거리기 때문이다. 또 만일 당신이 산도 좋아하여 깊은 산속에서 메아리를 만나 자신도 모르게 신에 대한 명상에 잠긴 적이 있다면, 틀림없이 팔레스트리나의 미사 『교황 마르첼리』를 더욱더 좋아하게 될 거다. 왜냐하면 이 곡 안에 성스러운 메아리도 살고 있기 때문이다. (215쪽)

 

 

헨델(1685~1759)은 『알치나』, 『세르세』, 『리날도』, 『로델린다』 등을 비롯하여 무려 마흔두 곡에 달하는 오페라를 작곡하였지만, 바흐(1685~1750)는 단 한 편의 오페라도 쓰지 않았다. 바흐는 『마태 수난곡』, 『요한 수난곡』, 『누가 수난곡』, 『마가 수난곡』 등 모두 네 편의 수난곡을 작곡하였지만, 헨델은 『브로케스 수난곡』을 하나만을 썼을 뿐이고 그것도 거의 연주되지 않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바로크 음악의 대가인 이 두 사람이 당시의 오페라와 수난곡의 영역을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다고 생각되어 왔다. 최근에 코로나로 집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나는 오랜만에 헨델의 오페라와 바흐의 수난곡을 감상하고, 바로크 성악의 정수를 한껏 즐기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뜻밖에도 서로 다른 영역이라고만 여겨졌던 헨델의 오페라와 바흐의 수난곡이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244~245쪽) 

 

진은숙(1961년生)의 바이올린 협주곡 첫인상은 참으로 신비롭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그것을 들으면서 아예 현실을 잊고서 몽환적 세계에 빠져 전율하고, 곡이 끝났을 때 아름다운 환상이 사라졌음을 아쉬워한다. 그러면서 당신은 이렇게 생각한다. 바이올린의 가냘픈 비브라토와 황홀한 글리산도가 빚어내는 꿈과도 같은 이 나라는 절대 이곳이 아니다. 작곡가 진은숙은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당신이 이 바이올린 협주곡이 묘사하는 세계가 그저 몽환적이고, 작곡가 진은숙이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당신의 행복했던 유년 시절을 까맣게 잊어버린 탓이다. (359~360쪽)

 

 

이런 『바순을 위한 독백』은 작곡가 윤이상 선생 자신의 삶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윤이상 선생은 한마디로 말하면 이십 세기 말러였다. 오스트리아인들 사이에서는 보헤미안이고, 독일인들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인이며, 세계인들 사이에는 유대인이었던 말러처럼, 윤이상 선생은 젊어서 음악교육을 받았던 일본에서는 조선인이었고, 마흔 살이 넘은 1956년에 건너가 현대음악을 공부했던 유럽에서는 동양인이었으며, 1967년 동백림사건 이후 남한에서는 빨갱이였다. 이런 삼중의 소외에 빠져있던 윤이상 선생은 바순을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3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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