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보아야지 달을 가리키는 손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달은 보려 하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 전부라고 생각한다. 손가락과 달의 관계를 보라. 우리가 공부하는 현실적인 이유나 목적은 성적, 취업, 부귀, 명예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부하여 얻고자 하는 최고의 경지나 이상은 무엇일까?(p.173.)
제3품 大乘正宗(대승정종) ‘가장 큰 수레와 가장 올바른 가르침’(p.77.)
부처가 주라고 한 최고의 경전이 백지 경전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p.79.)
제4품 妙行無住(묘행무주) ‘참된 행위는 얽매임이 없다’(p.82.)
재물을 베푸는 것과 지혜를 베푸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가치가 있을까? 유한한 재화를 베푸는 것과 무한한 지혜를 나누어 주는 것 간의 우선순위 문제이다.(p.84.)
제5품 如理實見(여리견실) ‘이치를 알면 참모습을 볼 수 있다’(p.87.)
겉모습은 형식이요 참모습은 내용이다. ‘안 볼 겉’이요 ‘겉 볼 안’이다. 겉모습은 표층 구조이고 참모습은 심층 구조이다. (pp.88-89.)
제7품 無得無說(무득무설) ‘이해할 수 없는 것과 설명할 수 없는 것’(p.96.)
간화, 공안, 화두 같은 불교적 수행의 핵심 개념은 문제를 발견하고 스스로 해법을 구하는 탐구식 방법이다.(p.98.)
제10품 莊嚴淨土(장엄정토) ‘장엄한 정토는 청정하고 밝은 마음에서 나온다’(p.112.)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고급스러우냐의 여부보다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간직하는 일이 더욱 소중하다.(p.114.)
제18품 一體同觀(일체동관) ‘일체 존재는 똑같이 평등하다’(p.151.)
눈은 세상을 보는 창이다. 사람마다 눈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똑같은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불교에서는 다섯 가지 눈을 구분한다. 육안, 천안, 혜안, 법안, 불안이 그것이다. 육안은 관찰의 도구로서 외부로부터 감각 자료(sense data)를 수집한다. 계정혜(戒定慧)를 성취함으로써 얻게 되는 천안은 멀리 보고 깊이 본다. 이러한 능력은 혜안이 지닌 지혜의 힘으로 이어진다.(p.153.)
제22품 無法可得(무법가득) ‘어떤 법도 말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p.171.)
달을 보아야지 달을 가리키는 손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달은 보려 하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 전부라고 생각한다. (p.173.)
제23품 淨心行善(정심행선) ‘깨끗하고 맑은 마음으로 선을 행하다’(p.175.)
가정에서는 부모님이 도덕만 공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사람다운 사람, 시민다운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어느 쪽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 할까? 어느 쪽도 잘못된 말은 아니다. (p.177.)
제26품 法身非相(법신비상) ‘서른두 가지 신체 특징은 여래의 본모습이 아니다’(p.188.)
음덕이란 대가성 없이 쌓은 덕이다. 불교 용어로 말한다면 홍복이 아닌 청복을 받은 셈이다. 부처의 참모습은 겉모습이 아니라 경전 속의 지혜에서 찾아야 한다.(p.190.)
제32품 應化非眞(응화비진) ‘현상에 얽매이면 일체 존재의 본모습을 보지 못한다’(p.217.)
우리 삶은 때로는 번개와 같이 몰아치고 때로는 이슬처럼 조용히 지나간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어떤 생각과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 금강경은 인연이 모여 만든 모든 존재나 현상을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에 비유한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모두 일시적으로 모였다 흩어진다는 것이다.(p.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