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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산 전창일과 통일운동 77년사(1권)

    • 저자
      전창일.김상구
      페이지
      608 p
      판형
      152*225 mm
      정가
      25000원
    • 출간일
      2023-04-05
      ISBN
      979-11-6752-278-8
      분류
      인문/사회/과학
      출판사
      책과나무
    • 판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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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분단 극복을 위한 투쟁
최초의 통일운동사
『호산 전창일과 통일운동 77년사』 1부 분단과 전쟁

호산 전창일의 일생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펼쳐진 통일운동을 기록하여 분단 77년 만에 출간된 최초의 통일운동사이다.
제1부 ‘분단과 전쟁’(1945년~1959년)에서는 전창일 통일운동의 근원을 밝혔다. 일제강점기 북청 물장수의 아들로 태어나 북에서 광복을 맞았으나 단선 단정 반대운동에 참여하고 한국전쟁 중 인민군, 국군, 미군을 거치게 되며 대한민국 국민의 삶을 시작하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광복 후 남과 북이 이념 차이로 겪는 갈등,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고 가족과 ‘전철구’라는 본명을 잃게 된 전창일의 나라와 자신을 찾기 위한 외침이 통일운동인 것이다. 책에는 교육환경의 변화, 신의주 학생 반공 의거, 여운형 암살, 단선 단정 반대운동 등 광복 후 북의 모습을 자세히 그려냈다.
백수(99세)에 가까운 전창일의 구술대담과 회고록, 남북 해외 동포들이 연대한 범민련 관련 자료, 투옥 중 받은 편지, 감옥에 수감된 동지들이 보낸 편지 등 접할 수 없는 통일운동에 관련된 각종 자료를 수록하고 있다.

<추천사>

북녘 조국 북청에서 태어나시어 대부분의 생애를 남쪽에서 보내시는 동안의, 선생님의 귀중한 생애이면서 당대의 사회사, 민족사 바로 우리 현대사가 조감되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자료와 주해 또한 이 저작의 실증력과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었습니다.
- 권오헌 (사)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헤아려 보니 선생님과의 인연이 20여 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처럼 긴 세월 동안 출석 모범생이 된 이유가 있습니다. 서둘지 않으시면서 깊은 연구와 통찰을 겸한 끊임없는 공부와 실행을 삶을 통해서 실천하시는 그 열의에 저도 모르게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 이석영 전북대학교 명예교수


가끔 선생님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얘기가 나돌았다. 왜 그럴까? 이 책을 읽어보면 자연스레 풀릴 것 같다. 선생님께서 6·25 동란 전후 겪으신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은 상상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가혹했다. 이런 가운데서 용케도 버티셨고, 또 엔지니어, 지식인, 통일일꾼, 번듯한 직장인으로서 각양각색의 삶의 여정을 밟으셨다. 일반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이러한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난 현장이 바로 우리의 해방공간과 통일운동 및 혁신운동의 현장이다.
-강정구 전 동국대학교 교수


전창일 선생님께서도 시대를 너무 앞서가시는 바람에 기구한 운명을 만들고 험난한 시련을 겪으셨습니다. 이 책 제3부 '전창일의 맺음 글'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통일문제에 대해 좋은 글을 쓰신 분, 저서 발간하신 분들과 감사와 격려 편지 등을 전자우편(e-mail)으로 교류하여 교우관계를 형성하며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학자들을 나이의 차이를 떠나 나는 학문적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그리고 나열한 10여 명 이름엔 '이재봉 교수'도 끼어있군요. 쑥스럽지만 저를 이토록 아끼고 사랑해주신 선생님을 곧 찾아뵙고 감사와 존경의 큰절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평화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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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호산 전창일

•.1928년 함경남도 북청군 신북청면 보천리 출생(11월 18일)
•.1947년 북청공업학교 졸업 후 월남, 한국대학 입학
•.1949년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
•.1960년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중앙위원으로 활동
•.1974년 인민혁명당 재건위(조작) 사건으로 연루되어 무기징역 선고받고 1982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출옥 후, 사면복권
•.1988∼1990년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공동본부장으로 활동
•.1991∼1998년 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상임부의장으로 활동 중 세 번 투옥
•.1998∼2010년 민족화합운동연합 공동의장으로 활동
•.2007년 8월 23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관련 증서를 받음(증서 7475호)
•.1999∼2008년 통일연대 상임고문
•.2022년 현재 한국진보연대, 진보당 고문

편저 김상구

역사는 정확하게, 정직하게 기록된 후 해석·평가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독립운동사, 현대사에 관한 공부를 하며 기록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사 관련 저서로 『5·16 청문회』(2017), 『김두한 출세기』(2015), 『김구 청문회』(2014), 『이승만의 숨겨진 친일행적, 다시 분노하라』(2012) 등이 있고, 독립운동 및 종교 비판 관련 저서로 『김규흥 평전』(2018), 『전쟁과 기독교』(공저 최천택)(2013), 『믿음이 왜 돈이 되는가』(2011), 『범재 김규흥과 3·1 혁명』(2010), 『예수 평전』(2007) 등이 있다. 그 외 『정판사위폐조작사건(가제)』을 출간 준비 중이며, 향후 『서북청년회와 배후 세력(가제)』을 집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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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추천의 글 - 4
발문 - 24
들어가는 말

제1장 내 고향 북청에 내 핏줄들이 살고 있다
01 분단으로 인해 뿌리가 바뀌다 56
02 혈육들의 소식을 듣기까지 67
03 40여 년 만에 핏줄이 쓴 편지를 보다 75
04 전창일, 또 감옥으로 가다 105
05 다시 흐른 세월 30년, 결국 보지 못한 혈육의 얼굴 120

제2장 일제 통치하에서 살아가기
01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다 146
02 북청의 지리와 문화 154
03 김춘배와 김일성 신화 164
04 ‘덤베북청’과 ‘북청물장수’ 그리고 북청의 인물들 180
05 일제 강점기 말기, 가족 이야기 216

제3장 북에서 체험한 해방
01 해방과 8월의 폭풍(원폭투하, 소련참전에서 종전까지) 226
02 점령군과 해방군 252
03 달라진 교육환경 270
04 반공학생의거와 소련군의 흥남 NZ공장 기계반출의 진실 276
05 소련 군인과의 인연 그리고 어머니와의 이별 290

제4장 단선·단정 반대운동
01 여운형의 죽음과 좌우합작운동의 몰락 302
02 한국대학 입학 그리고 단선·단정 반대투쟁 327
03 잊을 수 없는 인연, 동지와 친구들 337
04 남북연석회의와 5·10 단독 선거 361
05 제2차 남북조선제정당사회단체지도자 협의회(평양)와
남북조선 총선거(해주) 388
06 첫 번째 구속(1949년 4월) 그리고 옥중에서 만난 사람들 413

제5장 6·25 전쟁, 군대를 네 번 간 사연
01 1949년, 전쟁터로 변한 38선 436
02 운명의 기로 서울 460
03 인민군 생활(첫 번째 군대 이야기) 467
04 제주 육군 제1훈련소에서 겪은 고초(첫 번째 강제징집) 482
05 지게부대 이야기(두 번째 강제징집) 494
06 노무봉사단 이야기(세 번째 강제징집) 500
07 일본인 수사관과 한국전쟁 516

제6장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기
01 미군 부대(1169공병여단)에 취직하다 536
02 휴전회담과 원자폭탄 553
03 아내 임인영과의 인연 568
04 양말수입 장사와 미곡상회 투자 574
05 취직(OEC)과 결혼, 그리고 투자실패 경험담 585

표 목차
표1: 전창일의 호적과 남북 이산가족 신청서의 내역 비교표 68
표2: 북청 지역의 독립유공자 명단 190
표3: 북청 지역의 사회주의자 명단 195
표4: 미·소 군 조선 진주 관련 내역 251
표5: 신의주 사건 희생자 비교 내역 278
표6: 국회 프락치 사건 피고인 구형과 선고 432
표7: 1949년 38선 충돌과 인민유격대와 교전 현황 456
표8: 한국전쟁 인명피해 498
표9: 한국전쟁 사상자 비율 비교표 499
표10: 한국전쟁 참전 일본인 현황 526

자세히 보기 목차
1. 전창일이 형제들에게 보내는 편지(1992.2.10.) 75
2. 내 고향 이북(북청)에 띄우는 편지(1992.5.1.; 「말」지 1992년) 79
3. 동생 전철문이 전창일에게 보낸 편지(1992.9.11. 추석날) 89
4. 사촌 형 전철우가 전창일에게 보낸 편지(1992.9.12.) 94
5. 전창일이 사촌 형 전철우에게 보낸 편지(1992.12.) 98
6. 전창일이 동생 철문, 철명에게 보내는 편지(1992.12.) 101
7. 전창일이 이종 동생 조열하 장로에게 보내는·편지(1992.12.14.) 103
8. 전창일이 전철우 전철문 형제에게 보내는 편지(1995.3.22.) 108
9. 사촌 형 전철우가 전철구에게 보낸 편지(1995.11.5.) 114
10. 큰 누님 전수암(전초선)이 동생 철구에게 보내는 편지(1995.11.5.) 117
11. 동생 전철문이 전철구에게 보내는 편지(1995.11.5.) 118
12. 동생 전철문이 전철구에게 보내는 편지(2008.5.29.) 129
13. 전창일이 조카들에게 보내는 편지(2019.1.18.) 136
14. 대동아 전쟁 종결의 조서(大東亜戦争終結ノ詔書)(1945.8.15.) 236
15. 신의주 반공학생의거(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및 해방일보 사설,
신의주 학생 사건에 대하여(1945.12.19.) 279
16. 좌우합작 7원칙 315
17. 위대한 겨레의 지도자, 인민의 벗, 몽양 여운형 선생 48주기 추도사 319
18. 김구·김규식이 김두봉에게 보낸 편지(1948.2.16.) 362
19. 김일성·김두봉이 김구·김규식에게 보낸 답신(1948.3.15.) 372
20. 연석회의 공동성명서(1948.4.30.) 381
21. 최초의 국가보안법(1948.12.1.) 419
22. 한국군의 공격행위를 지지할 수 없다는 무초 대사의 지적에 대한,
한국군이 38선을 넘어가 공격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해명(1949.5.10.) 440
23. 송악산지구 육탄 10 용사의 진상, 김익열의 증언(1964.5.4.) 451
24. 백선엽(1920~2020) 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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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개

 

나는 유년기에 소의 등에 앉아 졸다가 떨어지기도 한 목동이었고, 소년기에는 엄마랑 누나와 함께 또는 아버지를 돕는 학생 농부였다. 청년기에는 미 제국주의와 그에 추종하는 자들에 의해 국토가 분단되고 민족이 분열되어 동족상잔의 슬픈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험한 애국·애족적 통일의 길을 걸으면서 낮에는 신문 배달과 막노동, 밤에는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주경야독하는 혁명가였다. 그 후 다섯 번 옥문을 드나들어 합계 15년 동안 감옥 생활하면서 옥중 수업하였다.

그리하여 각자는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풍요롭고 평등한 세상, 필연의 왕국에서 자유로운 왕국으로 인간의 비약이 약속되는 과학적 사회주의(Scientific Socialism) 이념이 나의 세계관이다.

하지만 분단된 조국을 통일하는 것이 민족지상의 과제로 인식하여 조국 통일운동에 몸 바치기로 인식하며 살아왔다. 조국의 자주통일은 모든 이념에서 최우선적 민족적 과제이다. 이에 따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조직운동에 미력하나마 일미지역(一尾之役)을 다해왔다.(30쪽)

 

 

국사편찬위원회 면담자와의 대화에서 “내가 이름이 전철구예요. 원래 본명. 저기, 저기 있잖아요. 구명(舊名), 구명 철구라고 돼 있잖아요.”

라고 하는 전창일의 발언을 기억할 것이다. 전창일이 “구명 철구라고 돼 있잖아요.”라면서 보여준 서류는 2007년 8월 1일 자로 작성한 ‘남북 이산가족 찾기 신청서’를 말한다.

2007년 17일부터 22일까지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렸다. 2000년 8월 15일부터 8월 18일까지 개최되었던 제1차 이산가족 상봉 이후 16번째의 행사였다. 2 박 3일간 두 차례로 나뉘어 열린 행사에서 1회차 상봉에는 북측 97명이 재남 가족 404명과 상봉하였으 며, 2회차에는 남측 94명이 재북 가족 219명을 상봉했다.

전창일은 이 상봉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통일부에 ‘남북 이산가족 신청서’를 제출했다. 아쉽게도 전창일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원인을 밝히는 것이 이 책 저술목적의 하나이다.(67~68쪽)

 

집에 단 하나 있는 이 시계가 가끔 고장이 났다. 이제 의지할 것은 새벽 닭 우는 소리뿐이었다. 하지만이 닭마저 새벽에 울지 않을 때도 있었던 모양이다. 아침밥도 못 먹고 도시락도 없이 학교에 갈 수밖에. 파리한 얼굴로 돌아온 아들을 본 뒤, 그 후 시계가 고장이 나면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앉아 밤을 새웠다고 한다. 애처로운 모정이었다.

전창일은 졸업 후 이틀 밤을 자고 서울로 떠났다. 모친 조갑진손은 그 무렵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1킬로미터 정도를 따라 나왔다.

제방 언덕에 서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들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전창일은 엄마! 하면서 돌아보고, 다시 뒤돌아보면 어머니는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들은 것은 집 떠난 지 3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후였다. 휴전되기 얼마 전인 1953년에 어머니가 창가에 앉아 하늘을 보면서 아들의 이름을 부르다가, 아들의 이름을 다시 부르면서 돌아가셨다 한다. 사촌 형이 알려준 사연이다.(299쪽~300쪽)

 

최근 5·10 총선의 투표율에 이의를 제기하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UN 한국 임시 위원단에 관한 미국 연락장교의 보고서를 근거로 한 결과에 따르면, 유권자 수는 9,834,000명이고 이들 중 등록자는 7,837,504명이고 투표자는 7,036,750명이다. 이 수치에 의하면, 등록자대비 투표율은 95.2%이지만 유권자 대비 투표율은 71.6%가 된다. 사실 이 수치 역시 의문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전체 유권자의 79.7%가 등록을 했고, 등록한 유권자의 95.2%가 투표했다는 것이 미국 연락장교의 보고내용이다.

이제 신문을 단순히 읽기보다 ‘행간의 의미’를 찾아야 할 시기가 되었다. “미군이 7일 이래로 접수한 보고에 의하면, 사망 78명 부상 수십 명 그리고 수백 명이 구타를 당하였다 한다. 이상 사망자의 대부분은 공산주의자의 습격 암살로 발생한 것인데, 여차한 행동도 투표자를 공갈하여 기수(旣遂)하지 못하였다”라는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대부분 유권자들이 생명을 무릅쓰고 투표에 참가했다는 얘기가 된다. 아무튼. 당시 대부분 언론들은 5·10총선의 화려한 결과를 홍보하기에 바빴다. 그렇다면 당시 상황은 어떠했을까?(389쪽)

 

 

미스터 ‘로’로 불리는 오세민이 기회를 주었다. 미군 장교에게 전창일을 추천했다. 지금 회화는 경험이 없어 서툴지만, 영어 실력은 자기보다 못하지 않다고 얘기했다. 미군 장교는 전창일을 불러 영어로 된 공문서를 읽어보라고 했다. 테스트를 한 것이다. 발음이야 어쨌든 막히지 않고 모두 읽었다. 그다음에는 어떤 문장 하나를 써보라고 한다. 역시 문제없이 척척 써 나갔다. 오케이였다. 이로써 전창일은 미군 부대의 통역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 지게부대의 노무자가 그리고 빨래쟁이가 될 뻔했던 전창일이 하루아침에 미군 부대의 통역·번역관이 된 것이다. 미군 통역이 된 것은 전창일의 일생 중 대 사건이었다. 먼 후일 인혁당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 전까지 전창일의 사회생활은 미군 부대 통역관 시절의 이력으로부터 시작된다. 통역이 됨으로써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 것이다. (541쪽~5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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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통일운동가의 삶을 통한 한국 현대사의 재해석
『호산 전창일과 통일운동 77년사』 1부 분단과 전쟁

호산 전창일의 일생을 통해 한국에서 펼쳐진 통일운동을 기록하여 분단 77년 만에 출간된 최초의 통일운동사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 연합군최고사령관(맥아더)이 발표한 일반명령 제1호에 의해 38선이 공식화되었고, 그 후 미군정, 모스크바 삼상회의, 미소 공위, 단독 정부, 6.25 전쟁 등을 거치면서 분단이 고착화된 지 77년이 되었다. 『호산 전창일과 통일운동 77년사』는 이 기간 동안 우리 민족이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투쟁했는가를 서술한 책이다.
갈등과 화합을 반복하고 있는 관 주도의 통일정책도 다루었지만, 좌우합작 7원칙, 단선 단정 반대운동, 4월 혁명, 6월 민주항쟁, 범민족대회 등 민간인 주도의 통일운동에 보다 큰 방점을 두었다.

『호산 전창일과 통일운동 77년사』는 1, 2, 3부(각 1권)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분단과 전쟁’(1945년~1959년)에서는 ①본명(전철구) 대신 이명(전창일)을 사용하고 호적(1921년생, 103세)이 실제 나이(1928년생, 96세)보다 7세나 많은 까닭, 사촌 형·누이·동생 등과 40여 년 만에 편지로나마 상봉한 감격 ②북청의 풍습·설화 및 고향을 빛낸 위인 소개, 정신대 회피 수단으로 조혼을 선택한 누이의 아픔 ③해방 후 소련 민정 하에서의 교육정책, 반공학생의거와 흥남 NZ공장 기계반출의 진실 ④좌우합작운동의 상징 여운형의 암살, 해주 남북조선 총선거 당시의 활약, 단선 단정 반대운동을 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사연, 옥중에서 만난 동지와 친구들 이야기 ⑤인민군, 국민방위군 제주 훈련소, 미군 지게부대, 국방군 노무봉사단 등 군대를 네 번 간 사연 ⑥영어회화가 가능하게 된 인연, 미군 부대(1169공병여단) 취직, 경제조정관실(OEC) 취직 및 아내 임인영과의 결혼 이야기 등을 다루고 있다.

전창일은 민간인 통일운동에 대부분 관여한 거의 유일한 인사다. 그 업보로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 시기에 모두 복역한 바 있는, 흔치 않은 이력을 지닌 통일지사이다. 백수(99세)에 가까운 고령임에도 정확한 기억과 놀라운 정열로 100회가 넘는 구술대담과 회고록을 통해 자신의 체험을 증언했으며, 그동안 간직했던 자료- 북녘 가족과 주고받은 편지, 남북 해외 동포들이 연대한 범민련 관련 자료, 투옥 중 받은 편지,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동지들이 보낸 편지- 등을 공개했다. 알려지지 않은 그리고 숨겨진 역사복원에 참조되리라 본다.

『호산 전창일과 통일운동 77년사』 1, 2, 3부 전권은 2,000페이지에 이른 방대한 분량도 놀랍지만, 400여 개의 주석, 300개가 넘는 그림(이미지), 32개의 표, 49개의 자세히 보기 등이 수록되어 자료집으로서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한편, 이 책에는 윤기복, 백인준, 여연구, 김영호 등 북쪽 통일관련 인사를 비롯하여 김춘배, 이재옥, 이춘균, 조훈, 송영회, 주진경, 전삼갑, 박윤원, 김제옥, 강택룡, 백금석, 안병화… 등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을 정확하게, 정직하게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임을 이 책은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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