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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에로 질르의 고백

    • 저자
      홍달오
      페이지
      386 p
      판형
      150*215 mm
      정가
      14000원
    • 출간일
      2018-11-26
      ISBN
      979-11-5776-641-3
      분류
      문학
      출판사
      책과나무
    • 판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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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한국 사회 특유의 경쟁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극심한 우울증을 경험한 저자가 자아를 되찾기 위하여 소설, 예술 평론, 우화, 패러디 등 다채로운 형식의 글로 써낸 자전적 산문집이다.
저자는 자신의 자아를 이루고 있는 대체불가능한 것들을 찬찬히 돌아본다. 유년기의 아름다운 기억과 행복한 관계들, 살아오는 동안 심취하여 향유했던 예술 작품들을 되짚어보고, 그 모든 것들이 긴밀한 연관으로 맺어져 구축된 현재의 자기 자신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나 부정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서 소중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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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978년 인천 출생으로 한국인 부친과 일본인 모친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심한 우울증으로 인하여 교수직에서 물러난 이래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혼혈인으로 태어나 자라면서 정체성 문제로 고민해 온 그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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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1장 순수의 시대
유소년기의 기억 / 일본의 외할머니 / 동생의 사고 / 할아버지와의 추억 / 정체성과 자의식에 대한 우화(寓話) / 음악과의 만남 / 최초의 죄의식 / 외할아버지와 다이쇼 시대

2장 군 시절
입대와 입원 / 선(禪) / 전역 후,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들 / 증언들 / 공산주의 비판 / 쇼스타코비치론 — 성스러운 바보

3장 노예의 시대
마르키 드 사드 / 노예 시절의 독서 / 이 시대, 내가 사랑한 예술작품들 / 파리의 아케이드 / 운명의 어릿광대

4장 치유의 시대
다른 세계와의 만남 / 과학의 아름다움

5장 교수 시절
교수의 실상 / 알코올 / 선은 선대로, 악은 악대로 / 우울증

6장 우화(羽化)의 시대
핏줄기의 상류에서 / 소의 창에 드리운 어린아이의 춤 / 에뮤, 대머리독수리의 펠릿을 뱉다 / 바지락의 신

에필로그 — 베토벤 현악 사중주 o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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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개

나의 유년, 순수한 욕망의 시대, 가질 수 있는 것만을 욕망하였던 시절. 

자기 자신을 벌주거나, 위로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시절.

귤 하나에 감동하였던 시절.

욕망이 덜 익은 무화과와 같아, 맑고 순수한 꽃이 아직 과육의 육감적인 향기에 섞이지 못하던 때. 그것에 아직 좀벌의 애벌레가 슬지 못하던 때.

그 순수의 시대. (18쪽, 「귤의 시대」)

 

할아버지는 말년에 위암으로 고통받다가 돌아가셨다. 임종이 가까워오자 극한의 고통으로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지셨고, 귀가 귓불 아래로부터 위쪽으로 말려 올라갔다. 친척 누군가가 귀가 말려 올라가면 임종이 가까이 온 것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의 유품은 안경, 낡은 나침반, 대나무통, 그리고 대나무 가짓대 정도가 전부였다. 그 작은 죽간들에는 뜻 모를 한자와 기호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그것들은 육효(六爻), 팔괘(八卦) 등 주역과 관련된 상징들이었다. 할아버지는 자신만의 체계를 가진 독특한 역학자(易學者)이셨던 것 같다.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들로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으니, 작은 오두막 안에서 자신이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세계를 스스로 일구고 계셨던 것이다.

(32쪽, 「할아버지」)

 

‘나답다는 것은 뭘까?’

이름에는 경계가 있지만, 늘 확고하지는 않다. 난 이름의 경계가 파도치는 곳에서 서핑하는 것을 즐긴다.

(35쪽, 「명명(命名)」)

 

외할아버지는 다다미방에 원환의 열차 디오라마를 설치하고, 모형 전차를 열심히 달리게 하고 있었다. 당신이 50여 년간 늘 같은 시간에 출퇴근했던 신바시(新橋)역의 모형도 한쪽에 세팅해 놓고, 전차를 잠깐 세운다. 그리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고, 다시 열차를 출발시키는 것이었다. 하염없이. 매우 진지하게 말이다.

그때 외할아버지의 눈을 보았다. 어린아이마냥 행복해하시던 외할아버지의 그 눈.

(46쪽, 「외할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

 

처음에는 좋아서 시작한다. 사람들이 나에게 재미있다고 해 주고, 박수를 친다. 그러나 어리석음에 장단을 맞추다가 결국 그런 어릿광대짓이 내면화되어 버린다. 나도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이유로 온갖 쇼를 펼쳤다. 학생들의 수준에 맞춘다는 것, 자신의 내면을 잃어간다는 것. 결국 어리석게 끌려 다니는 자신의 모습에 엄청난 환멸감을 느끼게 되고, 나는 강의 공포증에 걸려 버렸다. 그때 본 질르의 모습, 그 모습은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과 비슷하였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의아해하는 그 눈.

(161쪽, 「앙투안 와토, <피에로 질르>」)

 

우울증을 앓으면서, 우울증을 표현하는 데에도 많은 은유들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처칠은 그것을 ‘검은 개’라고 하였으며, 많은 우울증 환자들은 ‘추락한다’, ‘끝없는 어둠’ 등의 은유 표현을 사용한다. 나도 이 우울증을 ‘정신의 실금 상태’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도 우울증의 한 단면만을 보여줄 뿐, 그것은 그러한 표현들이 감히 닿지 못하는 곳에 존재하는 아픔이다.

우울증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그 증상을 폄하하기 일쑤이다. 우울증과 우울감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189-190쪽, 「우울증」)

 

나는 내 생애에서 자주 부딪히는 두 자아를 조화시키지 못한 채 방치해 놓고 살아왔다. 어렸을 때에는 한국인으로서의 자아를 부정하였다. 그렇다고 일본인으로서의 자아를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이제 나는 한국과 일본 양측의 자아를 모두 받아들이고, 긍정하고 조화시키며, 내면에 속한 ‘한국인 vs. 일본인’의 대립을 지양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한국인 & 일본인’의 내면적 혼합을 지향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인류에 속한 자들로서, 한국인 일본인을 넘어 평화를 지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사실 그러한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 왔던 선각자들이 있다. 나도 남은 인생은 그들의 평화 지향 운동에 동참하고 싶다. 그 단초로 삼기 위해서는, 일생을 그러한 자세로 살아오셨던 분, 내 가장 가까이 계신 어머니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3쪽,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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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빼앗긴 삶을 되찾아오기 위해, 그는 써야만 했다.
수많은 다름들 안에서 빛나는 자신을 찾기까지”

저자는 유년기의 행복하고 따뜻한 기억들로부터 시작하여 우화, 평론, 편지, 패러디, 소설 등 다양한 형식의 글들로 자기 자신과 그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하여 담담히 써 내려간다. 군 생활과 이후 대학원 시절, 인생에 풍요로움을 더해 준 예술 작품들의 향기에 흠뻑 취했던 시간들을 돌아보는 글들은 저자의 예민한 정서와 감성, 고전·낭만주의 시대의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고, 이후 학자의 길을 가며 외적으로 순탄한 행로를 걷는 듯했지만, 내면에서는 자아의 분리를 견디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으로 끔찍한 고통을 겪었던 괴로운 나날들을 가감없이 그려낸다.
한국인 부친과 일본인 모친 슬하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난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자아의 정체성을 생각했다. 애증이 깊이 얽힌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유아기와 사춘기 때에 무의식적으로 부정(否定)에 바탕을 둔 분리된 자아상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자아의 부조화를 방치한 채로 강의와 연구 등에 쫓기고, 남들보다 뛰어난 업적을 남겨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혼이라는 경사를 10일 앞두고 우울증으로 쓰러져 침대에서 나오지 못하는 몇 달여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기억력과 집중력을 크게 잃어 단 한두 줄도 쓰기 힘들 때도 있었지만, 저자는 ‘정신을 고통스럽게 쥐어짜며’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골절을 치유하기 위해 대체불가능한 자신의 기억과 인간관계들에 대해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글쓰기를 통해 결국 자신의 자아는 ‘한국인 vs. 일본인’의 대립과 부정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 둘을 긍정하고 이를 넘어서 ‘인간’이라는 보편적 범주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저자가 마침내 발견한 것은 자신의 내면에는 이미 풍성한 자기 자신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책의 후반부에는 저자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가계를 탐색하여, 한국과 일본이라는 거대한 두 체제의 사이에 놓인 채 자신의 불분명한 정체성으로 고민하다 무너지고 때로 그것을 극복해내며 서로 다른 것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 온 개인들의 아픔과 처연한 아름다움을 그려낸 역사소설 두 편을 담았다.
이 책은 저자가 전역 직후에 심취하였다는 프리모 레비, 헤르타 뮐러나 스베틀라냐 알렉시예비치의 글 같은, 자유를 박탈당한 인간의 경험을 다룬 수용자 문학, 증언의 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체성의 혼란과 그로 인한 질병에 의해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된 상황으로부터 살아남은 자의 기록. 그로부터 우리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폭력성이 다른 인간들과 스스로를 해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깊은 상처로 절뚝이면서도 무너져내린 삶을 재건해 나가는 인간 존재의 존엄함과, 인간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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