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고 있는데 아내가 계란 프라이를 해서 따로 접시에 담아 아들과 내 앞에 각자 놓는다.
밥을 먹으면서 아들의 계란 프라이 접시를 보니 계란 프라이가 두 개이고 내 접시에는 한 개이다(내가 일부러 확인 하려고 한 건 정말 아니다).
어라, 이것 봐라? 모른 척해야 하는데 바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뭐여? 왜 나는 프라이가 하나여?”
밥그릇에 반찬 몇 가지를 얹어서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며 대충 식사를 하고 있던 아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계란이 3개밖에 없었어.”
(중략)
계란 프라이 3개면 세 식구가 하나씩 먹으면 될 텐데….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그런 계산을 못하는, 아내는 바보다. (22-23쪽)
평생을 가정을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살아오다. 이제는 노년에 이르러 가는…. 아니, 잘 살아온 인생이든 화려하게 살지 못한 인생이든 인생이 황혼으로 저물어 가는 즈음이니, 그것만으로도 노년은 허무하고 슬프다.
하물며 인생 동반자였던 반려의 핀잔과 구박은 남은 생애에 남자에게 어떤 상처로 어떤 의미로 남을까.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이 말이 어찌 어린이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랴! 꽃으로 맞아도, 말로 맞아도, 노년은 노년이라서 더 아프고, 치유할 시간도 모자란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이 나이에 화인(花印)이 매 자국으로 기억될까 두렵다. 차라리 몽둥이로 때려라! 남들이 꽃 받고 사는 줄 알라. (107쪽)
“박노오기야, 일어나!”
무슨 소리냐고요? 40개월 된 손녀 가빈이가 내 방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늦잠을 자고 있는 나를 깨우는 소리입니다. (중략)
아주 오래전 친구들에게 제안을 한 적이 있지요. 성 뒤에 공(公)을 붙여서 호명을 하자고요. ‘박공’, ‘최공’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그렇게 부르니 점잖아진 것 같기도 하고 욕지거리를 해서는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스스로 퀄리티가 높아진 듯한 기분이 들어 좋더군요. 그 후로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친구들이 있어요. (중략)
어쩌다 아내와 통화를 하면서 가빈이를 바꾸어 달라고 하면, 수화기 너머에서 그녀가 깔깔대면서 그럽니다.
“박노오기야! 어디니?”
내 사랑 그녀만이 실종된 내 이름을 불러 줍니다. (295-2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