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불안한 소문들이 저 녀석을 감쌌다. 불안은 멀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한편에 머물렀다. 나만이 떠올린 것이 아니더라. 놀이터를 향하던 동네 아이들의 얄궂은 생각들 중 하나였고, 낯선 것을 빨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런 것은 다 허상이라는 어르신의 독선이었다. 여러 사람들의 공포가 유독 내 맘에 닿았을 뿐이다.
이제 생각하는 것조차 다른 사람의 머리를 빌려야 할 만큼 내 뇌는 굳어 가는 것 같았다. 단단하게. 그 단단한 플라스틱 덩어리들을 먹는 ‘벌레’님들께서 언제고 시선을 돌려 내 굳어 가는 머리를 노릴지 모른다. (59쪽)
남겨 둔 반 컵의 물은 이미 마시고 없다. 컵 바닥에 깔린 두어 방울 정도밖에 안 되는 물로 목을 축이고 나머지 한 방울로 괜히 얼굴을 닦아 본다. 이미 피부에 흡수되고 남아 있지 않은 물에 괜스레 욕지거리를 뱉어 본다. 이젠 마실 물이 떨어졌다. 미리 채워 놓았다면 아쉬워하지 않았겠지.
강가에 다녀와야 한다. 강줄기를 찾으러 갈 방법이 내 튼튼한 두 다리에 의지하는 방법밖에는 남아 있지 않다. 휴대폰 어플 속의 지도가 그리웠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라고는 중학교 교과서인 사회과 부도뿐이다. 저게 이미 십수 년 전에 쓰던 교과서이니 저 당시 지도로는 길을 찾을 수 없다. (143-144쪽)
플라스틱이 사라진 자리는 너무나도 컸다. 비상시에 휴대폰이라도 하며 외로움을 달래던 세상은 이미 사라졌다. 사람의 온기가 너무나도 그리운 세상에 사람들은 하나둘 지쳐 갔다. 전기와 물을 사용할 수 없었다. 당황하다가 눈물을 흘렸고, 화를 냈고, 참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도시의 눈물은 심각했다. 화장터에 모인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다. 가족인지, 이웃인지. 그들에 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으레 물어보는 질문 정도였다. 그래도 어르신 가시는 길이 외롭지는 않으시니 좋은 거라는 옆집 할아버지의 말씀이 이 공간에 울렸다. (246-247쪽)
길거리에도 집에도 벌레들이 지나간 흔적조차 남지 않을 만큼 플라스틱이 사라졌다. 전선 피복을 갉아 먹어 죄다 합선이 일어나면서 전기도 수도도 멀쩡한 것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벌레가 없는 곳. 그리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이 삶에 익숙해져 갔다. 다시 겨울이 오기 전에 무슨 대책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벌레’를 죽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부분의 방법들은 이미 테스트가 완료되었다. 새가 먹어도 살아남았고 강아지나 고양이가 먹어도 살아남았다. 불에 태워도 타지 않았고 물에 빠뜨려도 죽지 않았다. (2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