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흠, 그만하면 됐군. 예 솜씨는 어떤고?”
“무과에 들었사옵니다.”
“허, 무슨 재주로? 칼을 잘 쓰나? 활을 잘 쏘나? 아니면 창을 잘 다루나?”
“소인은 그러한 재주가 하나도 없사옵니다. 칼을 잘 쓰면 남과 다투기 쉬우니 미상불 열 번에 한 번은 내 몸이 위태할 것이요. 활을 잘 쏘면 사냥이나 할 노릇이지 아무짝에 소용이 없습니다. 더구나 창을 잘 쓰다니 그 무슨 말씀입니까. 자고로 창을 잘못 쓰면 신세 망치기 십중팔구요. 코 떨어지고 눈이 멀어 상투가 빠진다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옛사람이 시로 경계하되 이팔가인 체사효(二八佳人 體似酵) 요간장검 참우부(腰間長劍 斬愚夫)라 하였습니다. 즉 이팔가인의 몸은 꿀단지와 같아서 한 번 빠지면 허리 사이의 큰 칼로 어리석은 사나이의 목이 뎅강 떨어진다는 뜻이죠.”
배걸덕은 설익은 지식을 주워섬기며 큰 목소리로 외쳐 댔다.
“허허, 그러면 뭐로써 무과에 급제했단 말이냐?”
“그야 어렵지 않은 일이죠. 첫째 남아란 도량이 넓어야 하므로 술밥을 배불리 먹여 주고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둘째로 하지가 단단하여 남이 죽인다 해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셋째로 사람이 어리석어 남의 말을 잘 듣습니다. 왜냐하면 대인군자(大人君子)라면 작은 것에 얽매지 않고 큰 것에 대범하다는 뜻입니다. 까막까치가 봉황새의 뜻을 알 리가 없고 미꾸라지 송사리가 잉어 가물치의 큰 뜻을 몰라주는 것이니까요.” (63-64쪽)
신임 제주목사 김 경은 크게 망신을 당했다. 더구나 그가 아직은 알지 못하지만 그날 밤 그와 잠자리를 같이한 기생 입을 통해서 신임 사또의 비밀이 폭로되었다.
원래 관아에 예속된 수청 기생의 관심은 신임 사또가 도임할 적마다, 그의 사나이로서의 능력이 큰 관심사였다. 그러나 신임 사또의 그 물건이 놀랍도록 적어서,
애걔걔 사또님 거동 보소
삼척단구, 작은 삿대 갖고
만경창파에 배 띄우네
라는 노래가 퍼질 지경이었다. (111쪽)
“내 바지가 어디 갔어?”
멀쩡한 눈이라도 풀칠을 해서 몇 시각 동안 감고 있었으니 사 물이 보일 리 만무였으며 게다가 방 안은 캄캄했다.
“아이, 바지는 찾아서 뭘 해요? 어서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저 궤짝 속으로 들어가요.”
홍랑이 손을 잡아끄는데 과연 방 한구석에 큼지막한 옷궤가 놓여 있었다. 배비장은 급하게 서둘러 대는 바람에 물불 가릴 것 없이 궤짝 속에 발가벗은 몸을 디밀어 들어가자마자, 홍랑은 궤 뚜껑을 닫고 자물통을 ‘찰칵’하고 채웠다. (1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