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가슴속에 짐승을 한 마리씩 가두고 산다.
재용은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화면에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불러왔다. 말끔하게 도려내진 피해자의 가슴에 올려져 있던, 손으로 직접 깎아 만든 박쥐 모양의 목각 인형. 그것이 자꾸만 걸렸다. 피해자의 몸에 올려져 있었다는 건 중요한 단서라는 말인데…….
마우스를 눌러 증거물을 여러 각도로 살펴보는 재용의 이마는 펴지질 않는다. 분명히 어딘가에서 봤다. 그런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것만 기억해 내도 사건의 반은 풀릴 텐데……. (26~27페이지)
“나 왔어.”
아내는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를 유령 취급한다.
“나 왔다고!”
소리를 버럭 지른다. 그제야 아내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본다. 며칠 만에 보는 남편임에도 그를 보는 시선엔 반가운 느낌이 전혀 없다. 난 아내에게 고양이보다도 못한 존재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한다. 괜히 들어왔다. 차라리 숙직실에서 잘 것을…….
힐끗 쳐다본 고양이들의 식탁엔 벌건 고깃덩어리가 보인다. 왠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고 목소리가 다그치듯 세게 나온다.
“뭐야 저거?” (37페이지)
주차장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던 재용의 걸음이 우뚝 멈추어 섰다. 모텔에서 걸어 나오는 여자의 모습이 눈에 익었던 것이다.
재용은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눈을 가늘게 떴다. 정면으로 본 것은 아니었지만 아내였다. 틀림없는 아내였다. 내가 아내를 모를 리가 없다. 입고 있는 옷도 작년에 그가 사 준 옷이었다. 여자가 모퉁이를 돌아 버렸다.
재용은 멍하니 여자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재용의 몸이 떨려 왔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다. 이런 곳에 올 여자가 아니다. 그럴 여자가 아니다. 충격을 받아 꼼짝도 못 하던 재용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여자가 사라진 곳으로 뛰어갔다.
그 잠깐 사이에 여자는 사라져 버렸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한참을 주변을 살피던 재용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단축번호 1번을 길게 눌렀다. 예상대로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다시 2번을 길게 눌렀다. 집 전화도 받지 않았다.
재용의 손이 덜덜 떨려 왔다. 이래서 살인이 나는 것인가? 아내의 부정을 보지 않았는데 모텔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재용은 손끝이 덜덜 떨려 올 정도로 분노가 일었다. (99~100페이지)
잠깐, 살아서 날아오를 듯하다고? 날아오를 듯. 날아오를 듯……. 갑자기 재용의 모든 행동이 멈추었다. 드디어 기억이…… 났다. 박쥐 모양의 목각 인형. 사건을 처음 접하고서부터 내내 자신의 머리 한구석에서 찝찝함을 가져왔던 그 목각 인형.
그건, 그건, 아내의 보석함에서 보았었다. (122페이지)
그가 내민 것은 현장에서 수거한 박쥐 모양의 목각 인형이었다. 비닐봉투에서 목각 인형을 끄집어내는 은옥의 손이 덜덜 떨렸다. 아내의 떨리는 손이 자신이 범인이라고 얘기하는 것만 같아 재용은 절망스러웠다. (163페이지)
그 여자아인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져서 우현은 그녀의 이력을 조사해 보았다. 거주지는 일정이었다. 처음 사건이 발생한 지역. 그리고 두 번째 사건이 발생한 지역. 이마가 찌푸려졌다.
뭔가 있다. 가족관계를 조사해 보았다. 남편이 있었다. 강재용. 이름이 익숙했다. 가만가만, 그때 그 팀장 이름이 뭐였지. 강 뭐라고 했던 것 같았는데. (191페이지)
사랑한다는 말도 없었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용서치 말라는 말뿐이었다. 내게서 도망치려고 어젯밤 자기에게 웃어 주었던 것이다. 나에게서 경계심을 풀어내려고 어젯밤 그렇게 날 유혹했던 것이다. 날 떠나려고 어젯밤 그렇게 뜨겁게 날 안아 주었던 것이다.
배신감이 몰려왔다. 분노가 솟아올랐다. 너를 지키기 위해 내가 무엇을 포기했는데……. 이럴 수는 없다. 이렇게 버림받을 순 없다. 용서치 않아……. 용서치 않아……. 너도 날 버린 엄마와 똑같아.
가슴속에서 짐승이 으르렁거리며 포효하기 시작했다. (215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