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밤비로 내게 다가와
가로등이 희미해지는 새벽비가 되었어
어젯밤 그리도 울어 대던 귀뚜라미
새벽 산새 소리도
초라히 졸고 있는 비에 젖은 새벽녘이야
먼 하늘을 날갯짓해야 허기진 배를 채울 산새에게는
아마도 움츠린 배를 잡고 널 원망할지 모른다
그래도 난 깊어 가는 가을의 새벽
네가 두드려 깨우며 전하는 소리에
이렇게 시를 쓴다지
(18쪽, 「꼬박 밤새워 내린 비」 전문)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귓전엔 그대도 따라왔습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당신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두렵습니다
봄비가 멈출까 봐
오래오래 내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바람에 날리는 소리도
추녀 끝에 매달렸다 떨어지는 소리도
이제 떠나려나 봅니다
바람소리에
겨우내 매달렸던 말라 버린 나뭇잎
작별 인사를 하는 소리가 가슴에 들려옵니다
(25쪽, 「봄비 따라온 그대」 전문)
겨울의 긴 잠에
아직도 꿈을 꾸는 대지
봄비 내리기도 전에
뽀얀 속살로
대지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32쪽, 「봄 안개」 전문)
싸늘하게 식어 버린
그래도 그 미련에 못 떠나는 나뭇잎
핏기 잃어버린 흔들림
너 하얀 보석을 밤새워 맺어 주었어
깊어 가는 긴 꿈에 빠진 앙상한 가지 위
하얀 옷 입혀 놓고 내 품 속에 숨어 버렸다
(35쪽, 「겨울 안개」 전문)
출근길 식어 버린
몸을 잠시 데우고 있다
비 갠 날 양지 돌무더기에 올라와
식은 몸을 데우는 뱀의 무리처럼
그 며칠 전 더위에 지쳐 있던 날은
이미 추억으로 남아 어디론지 떠나 버리고
싸늘히 식어 버린 오늘
햇살 쏟아지는 창가에 기대고 있다
창밖엔 종종걸음을 하는 사람들
하얀 입김이 허공에 퍼져 간다
시계의 초침은 거리에서 돌고
내 마음은 시침처럼 마음만 돌아가고 있는데
(58쪽, 「창가에서」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