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어느새 현대인에게 삶의 목적 자체가 돼 버렸다. 돈이 없으면 경조사 모임에 참석할 수도 없다. … 돈이 없으면 사랑도, 건강도, 가정의 행복도, 혈육 간의 정분도, 친구 간의 우정도 깨지기 쉽다. 서글프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돈 때문에 ‘사경’을 헤맨 사람들이 많다. 충격을 받아 입이 돌아가고 안면 마비가 온다. 평생 모은 돈을 사기당했거나 투자해서 날린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 어떠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가? 돈을 제대로 알고, 돈을 바르게 다룰 줄 아는 자, 돈에 지배당하지 않고, 돈에 휘둘리지도 않는 자가 지혜로운 자가 아닐까? 꼭 철학자, 선각자, 성직자가 아니더라도 돈을 객관적으로 초월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돈에 지배당하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돈 때문에 제 목숨까지 끊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23쪽)
집 안 구석구석마다 홍보관에서 사 온 물건들이 가득하다. 모처럼 집에 들른 딸이 물건들을 보고 당장 반납하라고 소리 지른다. 할머니는 분한 마음에 약을 먹고 그만 죽어 버렸다. 할머니가 며칠째 보이지 않자, 아들 노릇 하며 환심을 산 사기꾼이 미수금을 받으러 집으로 찾아온다. 죽은 할머니를 발견하고 망연자실하다가, 손가락에 낀 금반지를 발견하고 빼려고 안간힘을 쓴다. 금반지가 잘 안 빠지자, 손가락을 자르려고 부엌칼을 꺼내 든 후반부의 장면이 생생하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개처럼 벌어서야 되겠는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처럼’ 버는 돈이 귀하게 쓰이기란 쉽지 않다. 개미처럼 땀 흘려 번 돈이라야 모이고 귀하게 쓰이는 법이다. 피땀 흘려 번 돈이라야, 돈 세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80쪽)
팔십 중반을 바라보는 어느 몰락한 ‘귀부인’의 일화다. 이분은 젊어서는 자수성가하여 어느 정도 돈을 모았으며, 장년에 이르러서는 ‘돈복’도 굴러들어 왔다. … 이러한 풍요로운 생활이 영원토록 계속될 것만 같았다. 유덕하고 명망가였던 남편이 많은 유산을 남기고 죽었다. 그러나 남동생의 사업 밑천을 대느라 불과 몇 년 만에 유산을 다 날려 버렸다. … 이 노부인은 아는 사람 집에 얹혀살다가 최근에 독립하여 원룸에 살고 있다. 그래도 항상 표정만은 밝다. 심신이 건강하다. 워낙 밝은 성격이라 우울증이 찾아올 리 없다. 그러고는 확신에 차서 말한다.
“난 돈하고 건강하고 바꿨어. 주변에 돈 많은 내 친구들은, 돈을 집에 쌓아 놓고 아파서 문밖에 나오지도 못하잖아.”
그렇다. 건강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절박한 처지를 백번 이해하더라도 돈 때문에 목숨을 버릴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 낙천적인 ‘여사님’을 보면서,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평범한 진리가 새롭게 다가온다. (1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