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 초여름 밤이다
버들가지가 희미하게 흔들린다
하늘이 아주 맑게 개고
달이 나와
시커먼 호수 위에 그 달이 떠 있다.
(중략)
밝은 하늘 아래에서 이상한 거리의 소음이
가슴을 따라 들려온다.
아침부터 일자리를 찾아 온종일 헤매다
이런 곳에서 쓰라린 추억을 씹고 있는 것은 나였던가
아! 여기는 일본의 수도 도쿄라 한다
나의 모국이라 한다
그러나 내게는
아득한, 아득한 이방에 왔다는 생각만 솟구친다.
_「이방인」
삼 년 동안 폐를 앓던 친구가 빈사의 몸을 비틀거리며, 먹을 것을 찾아 거리를 걷고 있다. 친구는 오늘 집주인에게 집을 뺏기고, 작은 보따리 안고 차가운 비를 맞으며 방랑길을 나섰다. 그런 수백만의 모습이 서로 겹쳐져 내 마음을 압도한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무력. 작은 애정과 감상이 이럴 때 무슨 소용인가. 나는 조용히 불을 지피고, 물을 끓여, 차가운 밥을 먹으며 신문을 읽는다. 내년도 예산 21억. 그 반에 가까운 군사비, 나는 그 무서운 그들의 힘에 압도되지 않는다. 21억을 대의명분으로 떠드는 무수한 그 녀석들의 말. 나는 그 속에서 그 녀석들의 공포의 모습과 우리들의 힘을 느끼면서 밥을 잘 씹어 위에 보낸다.
_「1933년 12월」
같은 길을
같은 목표를 응시하며
싸워 온, 오랜
중압과 한랭의 시간 ―
때로는 높은 이상을 치켜들고
젊은 정열에 몸을 불사르고
함께 몸을 적에게 내던지며
때로는 무참한 패배 속에서
깨지고, 상처받고, 괴로워 몸부림치며……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푸른 하늘 아래
너는 색깔 선명한 붉은 깃발의 물결 속으로 휩쓸려 갔다
너는 말하겠지
사상의 자유를 ―
너의 빛나는 눈동자의 밑바닥에 불타는
탐욕스런
진실 탐구의 열정
그것이
동지와, 우애와
모든 과거의 세속의 사랑을 짓밟고
군중의 행진에 몸을 내던졌다
(중략)
아아, 색깔 선명한 붉은 깃발의 물결이여
우리들이 치켜든 검은 누더기 깃발이여
_「누더기 깃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