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래는 평안해야 했고, 늘 만족스러워야 했고, 자신만만해야 했다. 내가 그렇게 그렸다. 내 밑그림에는 이런 막막함이 들어올 곳이 없었다. 안전해 보이는 자리에 쌓아둔 해변의 모래성이 예기치 못한 큰 파도에 무너지듯 갑작스레 처하게 된 청년 백수라는 상황. 전혀 생각지 못했기에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16쪽, 「부재」)
어떻게 보면, 이 불확실함의 장벽은 조금만 세게 툭 치면 곧 고꾸라질 것 같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을 들어 이 벽을 쳐 볼까 싶지만, 웬일인지 내 마음이 거부한다. 당장의 불명확함을 걷어내기를 망설인다. 꺼내든 주먹을 슬며시 주머니 안에 다시 넣는다.
사실, 다시 세상으로 나가기가 두렵다. 상처받기가 무섭다. 또다시 후퇴라는 결정을 내리고 마는 자신을 마주할까 걱정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긴 회복기를 겪고자 한다. 한 번의 처절한 굴복이 가진 여운이 아직 내게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핑계 삼아.
(44쪽, 「스케치의 상실」)
어떤 이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고 밀어내길 반복하며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동안, 나의 곳곳에 드러났던 상처는 그렇게 조금씩, 더디게 아물어 가고 있었다.
그 시간, 자유로워서 방탕할 수 있었고 방탕했기에 외로웠다. 그 시기를 거쳐 온 덕에 이제 조금이나마 제대로 된 ‘나다움’을 알아가게 되었다.
혼자만의 거리를 걷는 중에는 목표도, 방향성도, 그림도 필요치 않았다.
(104쪽, 「홀로 걷는 법」)
물 흘러가듯 마음 가는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방향을 정해 나아가면 당연히 멋진 사람,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것이 있을 줄 알았다. 그랬기에 내 인생 어딘가에 있을 ‘성공’에 당연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살았다. 하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되어 가는 것이 없는 현실과 마주하고서야 조금씩 깨닫고 있다. 나는 세상이 흔히 말하는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는 것을.
(208쪽, 「마음에만 품지 말고, 바로 지금」)
‘카공’을 수행하며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지금껏 쌓은 내공으로 알게 된 사실은, 짙은 나무색 혹은 흑색 인테리어가 된 카페는 손님들에게 ‘조금은 길게 쉬어 가도 된다’는 의미를 품은 곳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런 곳을 방문한다면, 가방을 무겁게 하여 엉덩이 아플 정도로 눌러앉아도 되었다. 이에 비해, 온통 하얀 벽지에 가구들이 아이보리 톤이라면 그곳은 절대적으로 ‘인스타 감성’을 위한 공간이니 할 일을 하고자 하는 때 피하는 공간 1순위가 된다. 그러한 카페는 몸은 가볍게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방문하는 것이 적절할 테다.
(262쪽, 「카페스타그램」)
나 몰래 전전긍긍하며 밤을 지새운 당신의 시간이 감사하다. 내 뒤에서 그림자처럼 단단히 버틴 당신의 마음이 감사하다. 오늘도 당신들의 묵직하고 넓은 등에 기대어 하루의 소음을 막아내고 지나간다.
당신들의 배려에 감사하고, 당신들의 버팀에 감사하며, 당신들의 그늘에 감사하다.
(276쪽, 「당신에게 쓰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