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한 가지 요리를 90분 동안 먹게 하면 처음 맛을 그대로 지속시킬 수 없다. 지치고 지루할 게 뻔하다. 그리고 요리사가 권하는 요리를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만들어 줄 경우, 어떤 아이는 좋아하겠지만 어떤 아이는 싫어할 것이다. 그렇다고 학생 개개인에게 원하는 요리를 주문받고 이것을 다 만들어 주기는 어렵다.
교사가 수업 요리에 전념하는 것도 잡무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떤 교사는 수업 요리는 이제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입맛이 너무 까다로워 웬만한 요리는 맘에 들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뷔페는 모두를 만족시키지만 요리사가 여럿일 때 가능하다. 혼자서는 너무 벅차다.
(11-12쪽)
어떻게 교육력을 회복할 것인가?
교육 현장의 참여자에게 자율을 허용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교육은 자율 위에서 성립한다. 교육 방식과 교육 과정의 자율을 통하여 다양한 형태의 학습 능력을 키울 수 있다. 국가 기준
시험으로부터, 기업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학교(교사)와 학생은 다양한 형태의 학력을 키울 수 있다. 우리는 자율 속에서 선의의 경쟁과 보완을 통하여 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교육력’이란 사회나 학교가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힘이라 정의할 수 있다. 사회의 교육력 신장이 미래 전략의 목적이다. 학교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교육 시스템의 교육력을 신장시켜야 한다. 가정, 사회, 학교의 교육력을 강화해야 한다. 가정에서 소위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지고 있으며, 건전한 시민을 만들기 위한 학교의 인성교육이 무너지고, 사회에서는 무질서한 청소년의 행동을 지도하지 못하고 있다.
(157-158쪽)
읽기의 과정이 그냥 헛된 것은 아니다. 읽으면서 새롭게 접하는 내용은 새로운 지식이 될 수 있고, 복잡하게 구성된 내용을 확인하면서 생각하는 능력도 기를 수 있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나 이론들을 읽으며 그 차이점을 파악해 보는 과정에서 사고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과학이나 기술 지문을 통해 어려운 용어를 이해하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어떤 현상을 탐구하는 자세도 배울 수 있다. 다만 나는 그 읽기의 모든 과정이 정답을 찾아 맞혀야 하는 순간, 나머지는 다 날아가 버린다는 점이 안타깝다.
(217-2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