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 들어서자 알 수 없는 냄새가 정말 죽음의 냄새처럼 왈칵 달려들었다. 밤이 깊도록 방 안을 서성거렸다. 경하 씨가 귀신처럼 알고 문을 두드릴 것만 같았다. 다시 경하 씨 걱정으로 마음이 어지러웠다. 도망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신혼여행 중 신부가 실종 상태에서 죽었다면 경찰은 맨 먼저 신랑에게 혐의를 둘 것은 상식이었다. 내가 죽은 이유를 찾을 때까지 경하 씨는 경찰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할 것이었다. 나로 인하여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경하 씨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 수는 없었다.
(20-21쪽, 「은희 – 미안하다」)
“처음 듣는 말 또 해 줘요? 동박새가 눈물을 흘리며 우는 이야기.”
“새가 눈물을 흘리다니요?”
“새도 슬플 땐 눈물을 흘리며 운다는 걸 사람들은 모른 것 같아요. 몇 년 전 겨울 어린 동박새가 둥지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어미 새가 하루 종일 죽은 새끼 곁에서 울고 있더군요. 동박새는 절대로 나뭇가지를 떠나지 않는 법인데 나무 아래로 내려와 우는 겁니다. 이상해서 망원경을 들고 관찰해 봤더니, 세상에서 제일 작은 이슬방울이라고나 할까! 놀랍게도 새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지 뭡니까.”
“새는 항상 아름다운 노래만 하는 줄 알았는데.”
“새나 사람이나 산다는 건 다 마찬가지니까요. 태어나고 죽고, 만나고 이별하고.”
“태어나고 죽고, 만나고 이별하고?”
은희 씨가 내 말을 되풀이하면서 다시 침울해지고 말았다. 나는 아차, 했다. 비록 새에 대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태어나고 죽고 만나고 이별하고’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정말 안 될 말이었다.
(85쪽, 「동하 - 운명 속으로」)
내가 기절했다가 깨어났을 때 아빠는 나에게 물을 먹이고 있었다. 얼굴에도 물을 뿌렸는지 얼굴에서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베개며 침대 시트도 젖어 있었다. 아빠는 내 몸에서 흘러나온 피를 닦으며 “이게 다 니가 여자로 태어난 것 때문이야.”라고 했다.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을 책망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일도 엄마가 알면 안 된다는 것을 단단히 일렀다. 아빠가 이르지 않더라도 나는 엄마가 알면 다시는 엄마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빠는 내 엉덩이를 두드리며 “우리 은희 대단해. 다 컸어.”라고 칭찬을 하고
는 침대시트를 걷어다 세탁기에 집어넣고 세탁기를 돌렸다. 나에게는 새 옷을 갈아입혔다.
다음 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내 얼굴은 터질 듯 탱탱하게 부어올랐고 열이 불꽃처럼 타오르면서 붉은 반점이 얼굴 전체에 뒤덮였다.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아빠는 약을 사다 먹이고 출근하면서 감기에 걸려 학교에 갈 수 없다고 학교로 전화를 했다. 혹시 할
머니가 올지도 모르니 할머니께도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일렀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눈이 짓무를 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 내가 여자로 태어난 탓이라는 아빠의 말을 곱씹으며 여자로 태어난 것이 원망스러웠다.
(166-167쪽, 「은희 – 악마놀이」)
동하 씨 문제는 요지부동이었다. 네티즌들이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나중범을 허물지 못했다. 나중범이 죄인이 되지 않는 이상 그럴 것이었다. 동하 씨가 5년 이상 중형을 받을 거라는 뉴스가 나왔다. 거기서 서른의 청춘을 다 썩혀야 할 것이었다. “이 가을 하모니카가 불고 싶어 어떻게 견딜까, 이제 곧 겨울이 오면 얼마나 춥고 고독할까, 그곳은 겨울이면 눈도 많이 오고 북풍이 뼛속까지 쳐들어온다는데 태어나 서른셋까지 따뜻한 남쪽에서만 살아온 그가 얼마나 추울까, 자유분방하고 평화롭게 거침없이 살아온 그가 얼마나 속이 터질까.” 하고 생각할수록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다. 이 두 남자의 어이없는 운명은 나, ‘나은희’ 때문이었다.
용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높은 사람들이 중대한 결단을 할 때마다 산에 오른다는 뉴스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결단을 해야만 하는 기로에 서게 되면, 인간은 산을 찾는 모양이었다. 산에 오를 때마다 커다란 눈물방울처럼 동그마니 앉아 있는 아지 무덤을 지났다. 가엾은 어린 영혼을 위해 아지의 고향 선화도의 텃새 동박새가 날아와 서럽게 울어 주고 있었다.
아지 무덤을 지나 산 정상의 용바위까지 올랐다. 그리고 높은 함량을 자랑한다는 독풀 박새 꽃을 따 먹기 시작했다.
(277쪽, 「은희 - 산에 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