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스스로는 이방인, 이른바 ‘이진’으로서 일본 감성을 체득하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떤 나라의 자연과 일상에서 특별한 감흥을 느끼고 그들의 전통 음률로 시를 짓는 것만큼 그 나라의 문화를 깊게 이해하고 체득할 수 있는 길이 어디에 또 있을까.
그는 머물러 있지 않다. 낭만적 유미주의자로서 그리고 노마드로서 고베를 걸으며 보고 느끼고 기록한 그의 사유와 언어들이 이토록 ‘명랑’하였으니, 올여름에 부임한 이슬라마바드는 어떤 풍경일까? 또 다른 ‘이진異人’으로서 엮어 낼 그의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김정례 전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추천의 글’ 중에서
2018년 10월 16일 ‘고베神戸’의 첫 밤은 차분하고 아늑했다. 한밤중 뱃고동 소리에 잠이 깼다. 바다가 가까웠고, 이곳에 살던 ‘이진異人’의 삶과 꿈이 궁금했다. 문득 이 낯선 도시를 깊이 들여다보고, 훗날 누군가에게 ‘고베 이야기’를 호기롭게 들려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내 발길은 도시 곳곳으로 향했다. 단순한 호기심이 인문학적 관찰로, 가벼운 산책이 진지한 탐방으로 이어졌다. 2021년 12월 12일 후도자카를 떠나던 날, 수많은 풍경과 이야기가 내 안에서 웅성거리며 메아리쳤다.(8쪽)
강물 위에 모여서 흘러가는 벚꽃을 일본어로 ‘하나이카다花筏’라고 한다. 이는 ‘꽃의 뗏목’이란 뜻. 2019년 4월 7일 기노사키城崎 오타니가와大谷川 강변을 거닐다가 ‘뗏목’을 만났다.
바람에 연분홍 꽃잎이 와르르 떨어져 휘날리다가 강물에 떨어져 흘러갔다. 물막이 구간에는 꽃잎이 수면을 가릴 정도로 쌓였다. 그 옆에 벚나무 그림자가 아스라이 흔들렸다.
나무에서 한 번
강물에서 또 한 번
피는 벚꽃
(97쪽)
롯코산에 총 1,700여 종의 식물이 자란다. 걷는 동안 삼나무, 너도밤나무 등 여러 수목별 숲이 나왔다. ‘삼나무 숲’이 가장 많았다. 제법 우거진 삼나무 숲이 보여서 다가갔다. 곧게 뻗은 나무 사이로 풀이 무성했다. 오후 햇살이 그늘진 풀 위로 내려앉았다. 숲 깊숙한 곳에서 ‘두견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견새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슬픈 사연을 상징한다. 한국에는 계모의 구박을 받다 죽은 딸이 새가 되어 운다는 설화가, 일본에는 동생을 억울하게 죽게 만든 형이 새가 되어 피를 토하며 운다는 내용의 ‘형제 전설兄弟伝説’이 있다. 새소리가 한결 구슬프게 들려왔다.
삼나무 숲
그늘 깊은 곳이여
두견새 울음
(151쪽~1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