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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의 선택과 결정.3

    • 저자
      윤홍렬
      페이지
      490 p
      판형
      152*225 mm mm
      정가
      17000원
    • 출간일
      2019-06-19
      ISBN
      979-11-5776-743-4(
      분류
      역사/문화
      출판사
      책과나무
    • 판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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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오늘날 세계 문명의 주축인 서구 유럽 사회의 토대가 된 국가, 로마의 뿌리를 살펴보는 『로마의 선택과 결정』 시리즈 제3권 「공화정 종식」은 내전의 씨앗이던 미트라다테스 전쟁부터 공화정의 문이 닫힐 때까지 엮었다. 이 책은 지중해의 승리가 로마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비참한 현실로 빨려 들어가 마침내 공화정이 종식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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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963년생으로, 서울시(재무국, 문화관광국, 디자인총괄본부 등) 및 서울시 각 구 근무, 국민고충처리위원회(現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서울시에서 건축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비전공자인 저자가 이 글을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진실을 파고드는 탐구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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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3권에 들어가며

2-4 독재 권력의 출현 BC 88년∼BC 27년
마리우스의 욕망과 술라의 권리(BC 88년) / 플라쿠스(Flaccus)의 실패(BC 86년)와 핌브리아(Fimbria)의 죽음(BC 84년) / 아테네 최후의 날(BC 86년) / 술라의 담판(BC 85년) / 킨나의 죽음(BC 84년) / 술라의 식언(BC 81년) / 마리우스의 부관참시 / 안티스티아(Antistia)의 불행 / 술라의 잔혹성 / 스테니스의 정직함 / 술라의 역행 / 술라의 악행과 기행 / 여인을 통한 소망의 실현(BC 74년) / 크라수스(Crassus)가 받은 의심(BC 73년) / 크라수스의 축재 / 루쿨루스(Lucullus)의 위기(BC 71년) / 폰투스 왕 미트라다테스(Mithradates) 6세 가족의 최후(BC 71년) / 키케로(Cicero)의 등장(BC 70년) / 폼페이우스(Pompeius)의 군 복무 해제 신고(BC 70년) / 카이사르(Caesar)의 한탄(BC 69년) / 폼페이우스의 위선(BC 66년) / 루쿨루스의 추락(BC 66년) / 티그라네스(Tigranes) 2세의 항복(BC 66년) / 노예 신분의 변화 / 기강을 세운 재무관 카토(BC 64년) / 카틸리나(Catilina) 음모(BC 63년) / 크라수스의 성품 / 체면 깎인 폼페이우스(BC 61년) / 로마에서 루쿨루스의 삶 / 제1차 삼두 정치(트리움비라투스triumviratus)(BC 60년) / 굴욕을 당한 집정관 비불루스(Bibulus)(BC 59년) / 클로디우스의 복수(BC 58년)와 키케로의 부동산 / 헬베티족 대이동에 대한 카이사르의 판단(BC 58년) / 리스쿠스의 고백과 디비키아쿠스의 눈물(BC 58년) / 루카 회담(BC 56년)과 카르하이 전투(BC 53년) / 카이사르의 결혼과 동성애, 여성 편력 / 카이사르의 계책과 원로원의 판단(BC 55년) / 율리아의 묘지(BC 54년) / 티투리우스 사비누스(Titurius Sabinus)의 실책(BC 54년) / 카르누테스(Carnutes)족의 항거 / 갈리아(Gallia)인들의 파문 / 콤미우스(Commius)의 분노(BC 51년) /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유린 / 쿠리오(Curio)의 조삼모사(BC 50년) / 루비콘강을 건너다(BC 49년 1월 10일) / 카이사르(Caesar)와 폼페이우스(Pompeius)의 클리엔스 / 쿠리오의 죽음과 누미디아 왕 유바의 판단(BC 49년) / 카이사르 진영과 폼페이우스 진영 / 폼페이우스가 받은 의심과 파르살루스(Pharsalus) 전투(BC 48년) / 코르넬리아(Cornelia)의 통곡(BC 48년) / 카이사르 군의 항명(BC 48~47년) / 폼페이우스의 최후(BC 48년) / 떠난 자에 대한 예의와 키케로의 표리부동 / 카시우스(Cassius)의 배반 /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BC 47년) / 키케로에 대한 카이사르의 우정(BC 47년) / 카토의 죽음(BC 46년) / 카이사르의 독전(督戰) / 카이사르의 악행과 기행 / 카이사르의 특권(BC 45년) / 안토니우스(Antonius)의 경거망동(BC 44년) / 클레오파트라(Cleopatra)의 오판(BC 44년) / 카이사르 암살의 전설 / 브루투스(Brutus)의 루비콘강 / 키케로의 필리피카(BC 44년) / 옥타비아누스(Octavianus)의 결혼 376 / 옥타비아누스의 인내와 카이사르의 평가 378 / 원로원의 책략(BC 43년) 381 / 옥타비아누스에 대한 의혹과 제2차 삼두 정치(BC 43년) 384 / 필리피 전투와 브루투스의 죽음(BC 42년) / 풀비아(Fulvia)의 분노와 브룬디시움 협약(BC 40년) / 살비디에누스(Salvidienus)의 변절(BC 40년) / 미세눔 협약(BC 39년)과 섹스투스 폼페이우스(Sextus Pompeius)의 실패 / 해임된 벤티디우스(Ventidius)(BC 38년) / 레피두스(Lepidus)의 오판(BC 36년) / 옥타비아누스의 폭로(BC 32년)와 악티움 해전(BC 31년) / 헤롯 왕의 연명책 / 승리자에 대한 옥타비아누스의 시기심


부록 군사제도 │ 연대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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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개

사령관에게 대항하는 부장과 함께 출전한다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부장을 자신의 심복으로 둘 수 없었던 플라쿠스는 로마를 떠날 때부터 실패의 씨앗을 가지고 출항한 결과 자신의 죽음을 재촉했다. 

  (75쪽)

 

  정복자의 노리개가 되지 않도록 자결할 것인가 하는 것은 스스로 결정할 문제이지 남편이나 오라비가 강요할 일이 아니다. 정절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했던 수많은 여인들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것은 그것이 스스로 결정한 미담이기 때문이다. 

  (127쪽)

 

  세월의 무게는 변화를 강요한다는 섭리에 따라 가축이나 기계처럼 취급되던 노예의 처우가 점차 인간적으로 개선되었다. 고대 국가로서는 유동성과 개방성이 탁월했던 로마의 신분 체제는 마침내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황가의 해방 노예에게 막강한 권력을 부여하기도 했다. 

  (158쪽)

  

  인간 세계의 부조리는 제안 내용보다는 제안자의 힘에 따라 결정되는 데 있다. 셈프로니우스 법을 주장한 클로디우스는 매우 정당했지만, 만약 그가 집정관 카이사르의 지지를 받는 호민관이 아니었다면 정의의 목소리는 허공 속에 사라졌으리라.

  (207쪽)

 

  관용을 베풀고 민중의 권리를 중시하던 카이사르도 상대가 로마인이 아니라면 자신의 관용이 작동되지 않았다. 특히 갈리아 전쟁에서 그는 자신의 특징인 관용의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자비를 구했던 베네트족의 원로원 의원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에브론족을 전멸시키려 했다.

  (260쪽)

 

  다윗과 치열하게 싸우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부하인 바아나와 레갑에게 암살당했다. 바아나와 레갑은 이스보넷의 머리를 잘라 다윗에게 가져와서는 칭찬과 보상을 바랐지만 그들은 수족이 잘리고 처형됨으로써 죄과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렀다. 다윗은 주군을 배반한 행위를 “악인이 의인을 그 집 침상 위에서 죽인 행위”로 규정짓고 이를 용서하지 않았던 것이다.

  (311쪽)

 

  독재의 기미는 마리우스가 가능성을 보여 주었고 술라가 체제를 열었다. 그 이후 카이사르는 이미 열린 문과 닦인 도로에 팻말을 세웠고, 아우구스투스가 보수 공사를 완료하여 그 팻말에 글자를 적어 넣었다.

  (344쪽)

 

  14세기 동로마 황제 칸타쿠제누스는 말했다. “적국과의 전쟁은 여름이 내뿜는 더위와 같아서 언제든 참을 만하며 대개 유익하다. 하지만 내전은 열병이 가져오는 치명적인 열기와 같아서 마땅한 치료약도 없으며 나라의 생명력을 갉아먹는다.” 또한 호메로스는 “내전을 좋아하는 자는 친족도 없고 법도 무시하며 가정도 없는 자다.”고 갈파했다. 하지만 술라, 마리우스, 카이사르는 물론이거니와 옥타비아누스까지도 내전의 승리로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다. 내전의 승리자가 적국과의 승리자보다 더욱 달콤한 승리감을 맛보는 만큼 내전에서 패배한 자는 적국과의 전쟁에서 패전한 장군보다 훨씬 더 비참했다.

  (385쪽)

 

  안토니우스의 또 다른 실책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투에 경험 없는 여인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진실이야 어쨌든 그는 도망칠 준비만 하고 있던 여인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다 전쟁터를 내팽개침으로써 패전을 자초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클레오파트라의 콧대가 조금만 낮았어도 역사가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파스칼의 말은 악티움 해전의 참전을 고집했던 그녀를 빗대어 한 말로서 매우 적절했다.

  (432쪽)

 

  헤롯 왕이 살아남기 위해 충성 대상을 수시로 바꾸어도 성공했던 이유는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깨닫게 했기 때문이며, 아울러 자신의 충성을 받게 되는 자 또한 그 가치를 이해할 정도로 현명했기 때문이다.

  (4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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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역사의 고비에 그들은 어떤 선택과 결정을 내렸나?
새로운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로마의 역사, 세 번째 이야기!”

로마는 오늘날 세계 문명을 이끌고 있는 서구 유럽 사회의 기반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력과 종교 그리고 법으로 세계를 세 번이나 정복했다. 로마사는 통치자, 귀족과 평민, 군대 그리고 속주들의 갈등이 뒤섞이고 인간 내면의 어둡고 일그러진 본성을 들추어내면서 준엄한 목소리로 교훈을 준다. 저자는 이러한 내용을 정리하여 항상 옆에 놓아둔다면 인생의 깊이를 느끼면서 읽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런 책을 썼다.
이 책은 『로마의 선택과 결정』 시리즈 제3권으로, 내전의 씨앗이던 미트라다테스 전쟁부터 공화정의 문이 닫힐 때까지 엮었다. 지중해의 승리로 인해 로마 공화정이 종식되는 과정을 담았다.
지중해 지역의 유일한 최강국으로 발돋움한 로마였지만, 승리의 열매가 몇몇 귀족들에게만 배분되었고, 함께 피를 흘린 민중들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귀족들끼리도 붕당을 이루어 서로를 견제하고 헐뜯었다. 그렇게 되자 민중과 지지자들의 힘을 등에 업고 세력을 얻고자 하던 3인이 국가 권력을 틀어쥐고 힘을 나누어 가졌으나, 그들까지도 파열음을 내자 마침내 내전의 불꽃이 격렬하게 발화되었다.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최종 승자로 굳힌 카이사르는 자신에게 반대했던 자들까지 모두 아울러 국가 체제를 정비하려 했지만 그가 차지한 종신 독재관이란 자리는 자신의 목숨을 지켜 주지 못했다. 카이사르에게 칼을 들이댄 자들은 자유를 외쳤지만, 카이사르의 죽음이 자유와 평화를 가져다주기는커녕 혼돈과 내전으로 빠져들게 하여 민중의 삶은 더할 수 없이 비참해졌다. 하지만 카이사르란 이름을 양도받은 한 젊은이가 막강한 정적들을 모두 물리친 후 로마 공화정의 문을 닫고 새로운 국가 체제를 선보였다. 그 체제는 공화정의 탈을 쓴 위선적인 통치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토록 배타적이고 오만했던 귀족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그를 받들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 책을 통해 로마가 어떻게 형성되고 무슨 이유로 멸망했는지, 그리고 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어떠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며 권력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성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더 나아가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의 가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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