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뒤를 핥듯이 달라붙는 시선이 경비원의 시선인지, 또 다른 누군가의 시선인지 알 수 없었다. 소현은 걸음을 재촉했다. 모든 것이 해결되어야 이 지독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 그러나 소현은 자신이 없었다. 그 엄마는 실종된 딸아이가 차라리 어딘가에서라도 살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 그렇게 두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84-85쪽, 「엄마들」)
저희는 왜 남들 앞에서 함께 웃을 수 없었던 걸까요. 왜 교실에서 눈치를 보고 숨죽이며 하루하루를 살 수밖에 없었던 걸까요. 살아 있는 게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던 성민은 그날 학원 옥상 위에서 한 달이란 시간을 더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복수심을 원동력으로 한 달을 더 버텼습니다.
(124쪽, 「4월의 자살동맹」)
형사가 돌아간 뒤에도 나는 그림 앞에 아주 오랫동안 서 있었다. 파스텔 톤의 연둣빛 정원. 뭉게구름처럼 지붕 위를 맴도는 분홍색 벚꽃 뭉치. 부드러운 햇볕이 한 아름 비춰 드는 거실. 그곳에서 누구보다 활짝 웃고 있는 어린아이. 2년 전 나는 언니가 꾸미고 싶었던 가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화창한 봄, 그 따스한 기운을 그대로 언니의 집으로 형상화하고 싶었다. 연정이가 실종되기 직전에 작업한 일러스트다. 그렇기에 지금 다시 그린다면, 이런 느낌이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연정이는 더 이상 없으니까.
(261쪽, 「사랑의 안식처」)
“그래도 꼭 네 의견이 듣고 싶어. 반드시 누군가 죽어야 된다면, 넌 어떻게 할래?”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윤서는 당황한 듯 눈을 치켜떴지만, 곧 진지한 얼굴로 나를 마주했다. 순간이지만 그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나는 분명…… 좀 더 죽어야만 하는 사람을 향해 방향을 틀 거야. 5명이든 1명이든 좀 더 사회에 필요한 인간이 있을 테니까 죽어도 싼 사람을 향해서. 악인을 향해서. 아마 기관사 입장에서는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는 알 수 없을 테지만 말이야.”
(349쪽, 「꽃이 피는 순간」)
여러분. 당시 열여덟 살 아버지와 동갑내기였던 어머니는 저를 버립니다. 아버지는 저를 혼자 키우셨습니다. 다섯 살 때까지 납치범의 손에 길러진 사람입니다. 친부모에게 학대를 당한 사람입니다. 청소년기부터 가출을 해 친부모와 연을 끊고 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 손에서 저는 어떻게 자랐을까요?
(404-405쪽, 「시체 옆에 피는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