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세 마리가 마당에서 놀고 있다. 하루 한 번 만나니. 오매불망 기다렸다는 듯 눈망울이 이슬 같다. 목을 갸우뚱거리며 꼬리를 흔든다. 배고픔일까, 기다린 사랑일까. 앞에 서면 쪼그려 앉아 날름날름 핥아 댄다. 엄마를 기다렸다는 것이 아닌가. 정이 가득한 눈망울이 더욱 사랑스럽다.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견공犬公은 세 마리다. 너무 점잖기에 젠틀덕Gentle dog, 탤런트 유씨氏 얼굴을 닮은 ‘동근이’가 대문을 지켜 준다. 까매서 미움받고 쫓겨난 까만 ‘까뮈’가 있고, 누렁털이 곱슬곱슬 금빛인 ‘금동이’가 같이 산다.
이 견공들이 날 신뢰하고 믿고 따라 준 것처럼 내가 이 견공들을 진실로 사랑하고 최선을 다했는가 반성했다. 정말로 미안했다. (95쪽)
사과의 일생은 하얀 피의 역사다. 인간에게 값진 영양 덩어리를 통째로 바치며 온갖 고초를 당한다. 사과가 맛있는 이유는 자신의 살을 먹고 씨를 강산에 뿌려 달라는 것, 종족을 번식시키려는 의도이다. 그것은 절대 지켜지지 않는다. 인간은 묘목으로 말한다.
이 지구상 식물 중에 인간으로부터 가장 많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사과나무다. 인간이 저지른 원죄의 마당에 있었던 죄, 먹힌 죄뿐인데, 그의 일생은 톱·칼·가위·농약의 위협에 살고 있다. 하지만 늘 감사하다며 인간에게 양식을 건넨다. 그러니 어찌 사과를 착하다고 말하지 않으리. 하나님도 사과를 선택해 놓으셨고, 스티븐잡스, 뉴턴, 스피노자도 그 위대함을 인정했다.
내가 심은 사과나무 세 그루가 지금 텃밭에 있다. 아직 설익은 반 빨간 사과 두 개를 따냈다. ‘하루 한 알의 사과는 평생 의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믿는다.
살아 있는 생물이다. 사과나무는 착하다. 그래서 늘 감사하다. (106-107쪽)
요즈음 스스로 자기의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아무리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해도 자신의 목숨을 끊는 선택은 더욱 용서받을 수 없다. 따라서 성인들의 살신보국을 위한 타살만을 자살로 인정해 줄 수 있으리라. … 자살의 함정은 순간이다. 나의 싸움이니 죽겠다는 결심으로 살아야 했다. 생명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지만 결코 내 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부모님이 주셨으니 내 것이 아니다. 자살은 곧 타살이다. 따라서 남을 살해한 것이니 가장 큰 죄인이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자살의 함정에서 벗어났다. (120-1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