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권력을 가진 자가 의심하고 편협한 생각에 집착한다면 매우 위험한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제력이 매우 뛰어 났다고 알려져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인간적인 잔인함과 결점을 모두 보여 주기도 했다. 개인의 성격과 업적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역사는 진실에 이르지 못한다고 영국의 역사가 로널드 사임이 말했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의 영향력은 신의 아들에 걸맞게 공화정 때의 집정관을 훨씬 뛰어넘어 거의 신에 가까웠으므로 어찌 개인의 성격이라고 무시할 수 있겠는가?(79쪽)
공화정에서는 시민들의 어려움을 다독거리는 다사로운 행동이 정치적 성공으로 이어졌지만, 아우구스 투스가 새로이 건설한 제정의 틀 안에서는 이런 인기몰이를 하는 자는 감히 황제의 지위에 도전하는 오만불손한 행위로 간주되어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89쪽)
힘겹기 때문에 아기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며, 사람이 아기를 갖는 것은 미래의 희망을 잉태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다. 전쟁의 포성이 잦아들고 수많은 사람들이 비참함과 궁핍 속에 놓였을 때 출산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92쪽)
조국이 아닌 다른 문 화 속에서 자란 자가 왕가의 후손이라는 혈통만 내걸고 국가를 통치 하기에는 위험할 뿐이었다. 관료들은 걸핏하면 조상의 순수성을 논란 거리로 삼지만, 게르만의 게루스키족 왕으로 추대된 이탈리쿠스의 경 우에도 부족의 이익과 명예를 손상시켰다며 왕이 자라 온 곳에 대해 부족민들이 비난과 공격을 퍼붓지 아니했던가?(153쪽)
유대 왕 헤롯의 말에 따르면 존경이란 기쁨보다는 고통이 더 큰 법이다. 왜냐하면 나이 에 걸맞지 않게 존경받지 못하는 고통은 나이에 걸맞게 존경받는 기쁨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168쪽)
부모란 고생과 난관 속에서 어렵사리 자녀들을 돌보아 성장시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성장한 자식들이 부모가 겪어 온 지난날의 어려움을 이해하여 준다면 부모로서는 행복하겠지만, 인간의 기억은 많은 양을 싣지 못하는 쇠잔한 선박과 같아서 대개의 자식들은 보살 핌 속에 자랐던 과거가 기억의 저장고에서 사라지곤 한다. 이렇듯 부모의 은혜를 잊어버린 자식들에게 지난날의 기억을 깨닫도록 강요한다면 불행의 싹을 틔울 뿐이다. 성장한 자녀들의 인생은 부모의 것이 아니며,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달라서 하나하나 다르게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207쪽)
권력의 꼭대기에 있는 자들은 쉼 없는 도전의 풍랑 속을 헤쳐 나 가기 마련이지만, 특히 제2인자는 항상 제1인자의 의심과 응징의 화살에 노출되어 있다.(209쪽)
편집증을 가진 권력자가 현실을 바라볼 때 선한 쪽보다는 그 반대쪽으로 기울기 쉽다. 더욱 위험한 것은 그러한 생각이 수월하게 실행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은 권력을 부여받았을 때 오만과 불의 없이 다스리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237쪽)
무릇 최고 권력자가 선정을 펼치려면 가족과 친인척을 돌아보아야 하는 법이지만,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아내의 탐욕을 제지하지 못했다. 황제 자신의 결백함과는 상관없이 메살리나의 끝 모를 탐욕은 황제의 권위를 등에 업고 선량한 로마 시민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왔다.(259쪽)
황제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운명은 대부분 비극이었다. 심지어 브리타니쿠스처럼 황제 살해 음모를 꿈꾸지 않았던 경우라도 의심의 표적을 피할 수 없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하기야 사울도 자신처럼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을 죽이려고 그렇게도 노력하지 않았던가?(2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