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명은 ‘위근무력증’이었다. 지금의 나의 상황과 너무도 닮은 이름이라 생각했다. 그간의 불안들이 유쾌하지 않은 사실 앞에 맥이 풀어졌다. 위 근육이 무력하다니. 위에 근육이 있음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 그게 무력해진 순간이라니. 역시 있을 땐 모른다. 무언가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무언가를 간과한다. 위장도 해야 한다는 일들만 한평생 하다가 지쳐 버리는데, 나라고 다를 게 무언가.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일상 속 ‘해야 하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겼고, 그때부터 보지 못하던 것들이 지금에 이르러 들고 일어선 것이다. 충동으로, 무력함으로. p.22
문득 이 순간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에, 눈앞의 배경들이 일그러지려 했다. 사실적인 감각을 눈으로 받고 있으면서도, 머릿속 상식의 틀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자 그 시각을 흩어 놓는 것 같았다. 미국인, 멕시코인, 한 국인이 태국-핀란드계 혼혈인의 빈집에 모이기까지의 지구적 우연. 곱씹으면 어마어마한 순간에 우리는 태연히 앉아 차를 홀짝였다. 생경한 장면은 어언간 펼쳐졌고, 나의 이해는 뒤늦게 따라오고 있었다. 나의 첫 카우치서핑이었다. p.58
어쩌면 나를 태우는 것이 그들에게는 당신들의 추억을 주워 보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떠나는 설렘을 안고 줄 서 있던 그 오래된 시간들은 이제 부부의 얼굴 위 자잘한 굴곡들로 남아 있다. 하지만 나로 인해, 세월의 먼지 아래 희미해지던 추억이랄 것들이 잠시나마 그들의 마음속에 번졌기를. 그렇게 나의 동행이 그들의 애틋한 젊음을 꺼내어 보는 일이었기를 바랐다. p. 175
665㎞, 33시간, 9명의 사람과 6번의 히치하이킹. 떠나던 순간의 665㎞는 도착하고 돌아보니 여섯 번의 만남이 되어 있었다. 제법 괜찮은 치환이라 생각했다. 버거웠던 숫자가 가벼워지고, 무정의 것이 유정의 것이 되었으니.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가는 것과 바르셀로나로 가는 길을 여행하는 것의 차이가 665와 6의 간극이 아닐까. 그렇듯 점과 점이 아닌 둘 사이의 선을 여행할 수도 있기에 우리는 여행과 여정을 나눈 것이 아닐까. p.221
탐페레를 멜리사로, 프라하를 치프리로, 프랑크푸르트를 야콥으로. 나는 지나온 도시들을 그곳에서 함께한 이들의 이름들로 기억한다. 어느 멋진 풍경을 다시 한 번 돌아보듯, 나는 내 앞에 있는 이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그 기억의 기록을 그들에게 선물했다. 그 작은 종이 한 장으로 우리는 언제 어디선가 다시 서로를 알아볼지도 모른다며. 그들의 일상엔 작은 흔적 을, 내 기억엔 짧은 이름을 남겼다. p.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