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과 눈이 닫혀 있었다고?”
생각에 잠겼던 젊은 부인의 눈매가 올라갔다. 머리를 올린 것으로 보아 분명 혼인한 부인이지만, 아직 소녀의 태가 남아 있었다. 다시 앙다문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오디처럼 까만 눈망울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눈치였지만.
“입가에는 거품도 일었느냐?”
“예.”
“살찐 자로구나.”
졸다가 깬 전령의 눈이 동그래졌다. 눈앞에 망자의 모습이 또렷하게 스쳐 갔다. 기골이 장대하고 풍채가 다른 이의 곱절은 되는 자였다.
“어찌 아셨습니까? 역시 추리 마님이십니다.”
열흘 전 철산에서 보고 온 시체를 바로 눈앞에서 보듯 읊어 대는 마님의 신기 어린 솜씨에 놀란 것이다. 달리 추리 마님이 아니었다. ( 8쪽)
정동호는 목덜미를 감싸는 서늘한 바람에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잠시 잠들었던 모양인데 그사이 구들장이 이렇게 식었단 말인가. 온몸에 한기를 느끼며 요 아래 손을 넣어 보았다. 여전히 절절 끓고 있었다. 잠결에 사방을 둘러봤지만 창문, 방문도 닫혀 있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서안 앞에 앉아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툭, 투둑.
책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무심코 손바닥으로 쓰윽 닦아 내는데 소스라치게 차갑고 감촉이 미끌거렸다.
쏴와와아-
머리 위에서 물벼락이 떨어졌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질렀지만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흠뻑 젖은 채 덜덜 떨면서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 자신을 노려보는 붉은 눈알 네 개를 보고 말았다.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천장에서 물구나무서듯 거꾸로 내려온 자매 귀신 중 맏이가 투덜거렸다.
“아니, 뭘 했다고 또 기절이야?”
“내 말이.”
두 자매는 투덜거렸지만, 문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이들을 지켜보는 처녀 귀신은 벼락처럼 호통을 쳤다.
“야, 니들 단정하게 하고 오라고 했냐, 안 했냐?”
처녀 귀신의 호통에 자매는 샐쭉해졌다.
“그 봐, 언니. 머리는 묶자고 했지? 사또 놀라신다고.” ( 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