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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빠의 설날
세월의 체감속도는 나이 들수록 더욱 가속도가 붙는다더니 참 무섭게도 빠르게 스쳐간다. 또다시 맞이하는 설날 아침이다. 이날이 되면 손자들이 부쩍부쩍 커가는 걸 바라보며 덩달아 늙어버린 나를 실감한다. 아직도 내 마음의 나이는 어린 시절을 벗어나지 못한 탓일까? 안 어울리는 옷을 입은 것처럼 할아비라는 호칭이 어색하기만 하다.
추억의 절반은 사진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결코 물리지 않는 아이들의 사진을 꺼내놓고 세월을 거슬러 더듬어본다. 틈틈이 꺼내보는 사진 속에서 아이들의 또 다른 모습들이 하나둘씩 보태진다. 태어나던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 장면도 사랑스럽지 않은 모습이란 찾아볼 수 없다. 녀석들은 나를, 미운 건 보지 못하는 눈먼 할아비로 만들어버렸다.
할아비에게 새 생명의 경이로움을 일깨워준 겸이와 휘수는 한 달 뒤면 초등학생이 된다. 애교덩어리 유수는 다섯 살이고, 달포 전에 보았을 때보다 부쩍 말이 늘어난 담이는 네 살이다. 그래도 할아비에게 세배하겠다고 찾아주는 녀석들이 있어 결코 외롭지 않은 설날이다.
언제까지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애틋한 인연으로 다가온 손자들은 더없이 귀한 축복이다. 아무리 험한 시련이 닥쳐와도 나와 이 아이들을 갈라놓을 수는 없을 게다. 세배한다고 엎드린 저 사랑스러운 모습을 할아비 눈 속에 가슴 속에 꼭꼭 담아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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