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남의 ‘인생과 관상’으로 덧셈인생을!
과학은 어떤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체계화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연현상을 체계화한 것이 자연과학이고, 사회현상을 체계화한 것이 사회과학이며, 인문현상을 체계화한 것이 인문과학인 것이다.
그런데 과학이 뭐가 잘 나서 훌륭하다고 하는 것인가? 도대체 왜 과학에 권위를 부여하고 과학을 신뢰하는가? 왜 과학에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가? 과학은 칭송하고, 비과학은 비하해도 되는 것인가? 중립적이지 못한 것은 아닌가?
수학에서는 어떤 명제를 증명하면 그것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반면에 과학에서는 자주 바뀐다. 원래부터 증명을 못했거나, 완벽한 논리적 증명을 못했을 경우가 있다. 그런데 증명했다고 다 믿을만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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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점쟁이를 믿는 것은 과연 비과학적인가? 또한 관상학은 과학인가 비과학인가? ‘인생과 관상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서 관상학은 통계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융합학문이라고 말하면서 “관상의 목적은 무엇인가부터 봐야 한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추길피흉(趨吉避凶)과 지인택술(知人擇術)이다. 추길피흉은 운명을 알아내 재앙을 피하여 근심을 덜어주고 복을 받는 것이다. 지인택술은 사람을 알고 선택하여 기용하는 기술이다.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위나라 명신 유소(劉邵)는 『인물지(人物志)』에서 시종일관 올바른 인사를 위해 재질과 상황에 따라 인재를 적절하게 배치할 것을 주장했다.”라고 얘기하고 있다.
관상학이 과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이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경작하는데 연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상학을 바탕으로 쓴 ‘인생과 관상’을 통해 운명을 개선할 수 있다면 덧셈인생이 아니겠는가?
이 책의 저자 홍성남은 20여 년간 기자로서 일선을 누볐다. 그 시절 기자 홍성남은 수많은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는 자기 나름대로 관찰했던 인간상을 분류하고, 오랫동안 관상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했으며, 이를 통계학적으로 접근했다. ‘미신’으로 치부하는 ‘관상’을 학문적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이번에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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