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인 ‘파란 눈’은 주인공 영민이 악몽을 꾼 후에 찾아가는 술집의 이름이다. 영민이 그 술집을 찾는 이유는 영민의 꿈을 해석해주는 바텐더가 있기 때문이다.
영민은 아내 선영과 딸 소희를 호주로 어학연수를 보내고 혼자 지내고 있다. 어느 날 친구 동생인 주란의 소개로 자신을 줄리라고 하는 여자와 카풀을 하게 되었다. 줄리는 영민과 같이 출근하며 헤어진 남자친구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 맞선을 본 남자들에 대해 가끔 불만을 늘어놓곤 하는데··· 영민은 줄리의 불만을 들은 날이면 악몽을 꾼다. 영민은 꿈속에서 줄리가 말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모두 죽인다. ‘파란 눈’에서 영민의 꿈을 들은 바텐더는 영민이 꿈을 꾼 이유와 악몽을 꾸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알려준다. 줄리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영민은 서서히 줄리에게 빠져든다. 바텐더는 영민의 꿈을 해석하며 영민이 줄리에게 빠졌고 그래서 악몽의 내용이 점점 공격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을 알고 줄리에게 고백해 마음의 부담을 줄이라고 한다. 영민은 줄리에게 고백하지만 줄리는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영민은 몇 달 간 줄리와 꿈과 꿈의 해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가 바텐더가 십여 년 전 한 사건에서 영민의 친구를 죽이고 금괴를 가로채 사라진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민은 금괴를 찾기 위해 가슴에 손도끼를 품고 마지막으로 ‘파란 눈’을 찾는다. 영민은 꿈을 이야기하고 바텐더는 꿈을 해석한다. 바텐더는 이미 영민이 왜 왔는지를 알고 영민이 잃어버린 기억과 비밀을 이야기하지만 영민은 믿지 않고 바텐더에게 손도끼를 휘두르며 금괴를 두고 결투를 벌이는데···
영민과 바텐더의 대화에서 ‘파란 눈’은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영민에게 ‘파란 눈’은 바텐더와 꿈을 이야기하는 술집이지만, 바텐더에게 ‘파란 눈’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 혹은 그것들로 채워진 공간을 의미하며 한편으로 바텐더 자신을 의미한다. 바텐더가 말하는 ‘파란 눈’을 설명하는 것은 바다 깊은 곳에 사는 꽃게에게 바다를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평생 바다 속에서 살다 죽는 꽃게는 어부가 그물로 잡아 배 위로 끌어올리면 그때서야 바다를 볼 수 있다. 사람들에게 ‘파란 눈’을 보이기 위해 ‘파란 눈’에서 끌어낼 그물과 어부는 없고 사람이 ‘파란 눈’에서 벗어나는 순간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므로 ‘파란 눈’을 알 수 없다. 소설 속에서 영민이 ‘파란 눈’에서 나오지만 그건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며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작가가 ‘파란 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파란 눈’ 너머에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는 표현하기 어려운 ‘파란 눈’을 어떻게든 표현해야 하기에 소설 속에서 계속 말한다, 여기가 파란 눈이라고.
“어서 오세요. 여기는 파란 눈입니다. 파란 눈은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망각의 집입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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