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초 이야기
길을 가다 우연히 노상(路上) 화원에 들르게 되었습니
다. 삭막한 아파트 건물들이 무성한 동네 한 길모퉁이에서 수더분하
게 생기신 두 노년부부가 온갖 봄꽃들과 화초들을 내놓고 팔고 있었
습니다. 획일화된 아파트촌이긴 해도 벚꽃과 목련이 흐드러진 가로
수 풍경과 함께 이런 길가 꽃집이나 냉이, 달래, 씀바귀 같은 봄나물
을 손수건만 한 좌판에 늘어놓고 파는 할머니들의 흰 머리카락이 봄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은 숨 막히는 아파트 생활에서 그나마 사람 냄
새를 진하게 맡게 하는 정경(情景)입니다.
사랑초를 만난 것은 바로 며칠 전이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길 한편
에서 이 화초를 만났습니다. 덩치가 큰 화초들 틈새에서 아주 작은
몸을 가진 이 화초는 이름 하여 ‘사랑초’랍니다. 그 이름과 하늘거리
는 자태가 아주 예뻐 주인에게 값을 물으니 그는 머뭇머뭇합니다.
“얘는 별로 상태가 안 좋으니 저쪽 실한 놈으로 사가시죠.” 합니
다. 아닌 게 아니라 가만 보니 비 맞은 나비처럼 파리한 잎사귀가 영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안 사가면 그대로 저 작은 잎마저 사그라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냥 이것 주세요.” 했더니 주인은 원래 2,000원인데 비실거리는 화
초의 형편을 생각해서 1,000원에 주겠다고 합니다.
사랑초를 집으로 조심스레 안고 집으로 와서는 제가 아끼는 우윳빛
화분에 분갈이하고, 빛이 잘 드는 베란다 한쪽에 놓고 이 녀석의 파
리한 잎사귀를 보면서 날마다 중얼거렸습니다.
“사랑하는 사랑초여, 그대의 연약한 뿌리와 줄기와 이파리 마디 하
나하나에 사랑의 이름으로 간구하노니 부디 일어나 너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다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
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초.”
며칠 후 사랑초는 신기할 정도로 건강하게 자라났습니다. 없던 잎
사귀 대궁이 한 개와 꽃술이 슬몃슬몃 올라오더니 이제는 제법 모양
을 갖추고 웃는 표정입니다.
버려질 뻔한 작은 화초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눈길을 받는
순간, 다시 생명의 기적을 연출해 내는 이 화초를 통해 천지에 미만
해 있는 사랑의 풍성함에 새삼 감격스러웠습니다. 이제는 우리 집의
여러 화초 중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보물이 된 사랑초, 식물도감을
찾아보니 사랑초의 꽃말은 ‘널 끝까지 지켜줄게’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