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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아니다
“네가 정말 나였을까?”
그는 군살 하나 없는 늘씬한 몸매에게 물었다.
“아무렴, 너였고말고.”
오랜 세월 책갈피 속에 갇혀 있던 사내가 바짝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본 듯한 얼굴이 하도 낯설어서……”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언제 저런 때가 있었나 싶었다.
“낯설긴 나도 마찬가지야. 그동안 너는 나를 책갈피에 가둬놓고 남산만한 배불뚝이가 되었구나.”
“미안해. 너무 오래 챙기지 못해서……”
그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묵은 책을 정리하다 대충 넘겨보는 책갈피 속에서 불거져 나온 사내는 허여멀건 얼굴에 호리호리한 체격이었다.
그때 그의 몸무게는 75kg이었다. 허리가 휠 만큼 보대낄 때도, 늘어지게 먹고 자고 게으름을 피워도 늘 그 몸무게였다. 젊은 날의 몸무게치고 좀 그렇다 여길지 몰라도 학창시절 그는 언제나 맨 뒤에 줄을 섰다.
그런 그가 세월의 더께 같은 나잇살이 찌고 뱃살이 엉긴 것은 직장을 그만두고 작은 책방을 차린 뒤부터였다. 늦게까지 좁은 공간에 앉아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꼼짝없이 운동량이 줄고 때를 놓친 허기로 과식하기 일쑤였다. 가끔가다 밤늦게 마시는 술자리도 그의 과체중을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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